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

중국의 북산에 살고 있던 우공(愚公)은 높은 산에 가로막혀 왕래하는 데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자 두 산을 옮기기로 하였다. 둘레가 700리에 달하는 큰 산맥의 흙을 퍼담아서 발해만(渤海灣)까지 운반하는 작업이었다. 우공은 자식들과 함께 산의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에 담아 발해의 은토라는 곳으로 날랐다. 그런데 은토는 워낙 거리가 멀어서 흙을 한 번 버리고 오는데 한 해가 걸리는 곳이었다. 이것을 전해 들은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두 산을 들어 옮겨, 하나는 삭동에 두고 하나는 옹남에 두게 하였다고 한다.

인도영화 ‘만지히’는 이 우공이산의 설화를 바탕에 둔 실화다. 주인공은 다친 아내를 잃은 원인이 가로막힌 돌산으로 인해 빠른 치료를 받을 수 없었음에 있음을 한탄하며 무려 2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돌산을 깎아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짐작하겠지만 우공(愚公)이라는 이름에는 어리석음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인간이 흙을 퍼 날라 산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어리석다고 보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물론 최신 장비가 도입되어 하루아침에 산 하나를 허물어버리고 마는, 인간의 능력이 신적인 경지에 오른 현대의 과학 문명과는 상관없던 시대의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 우공이산은 산 하나를 옮기거나 돌산에 길을 만들거나의 문제이기 전에 인간의 강한 의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리라.

‘빨리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평생을 바쳐 산을 옮기겠다는 것이나 반 일생을 바쳐 돌산에 길을 만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얻어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공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하면 자식들이 계속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 일에 대한 간절함과 함께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최첨단 시대인 현재에도 유명인들은 이 말을 끊임없이 인용하고 자신의 책상 앞에 걸기도 한다. 정치적인 비약을 하려고 빌려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은 이루어낼 수 있다는 신념을 되짚어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우공이 산을 옮기려던 계획에 비할 바는 아니나 우리에게도 끊임없는 계획이 생겨나고 더러는 취소되기도 한다. 결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조급해하며 타인을 책망하거나 사회를 규탄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후회하는 일이 많아졌고 후회를 상쇄하려고 또다시 후회를 자초하기도 한다. 현재는 새로운 길이 쉴 새 없이 만들어지는 시대, 쉽게 계획하고 쉽게 변경하고 다시 취소하는…, 그런 것들이 반복되는 시대다. 개인도 사회도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을 세워야 하고, 세대가 바뀌고 책임자가 바뀌더라도 끊어지지 않는 맥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현재는 맥락을 잃어버린 시대다. 내 것을 쉽게 버리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린다. 구룡포의 구만리에 보리가 없어지고 메밀꽃이 만발하다는 뉴스는 그래서 반갑지 않다. 우공이 일생을 바쳐 산을 옮기기로 한 결심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맥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마냥 새로운 것만 쫓아가기보다 훗날에 더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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