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한국에 공개적 모욕…평화 프로세스에서도 도움보다 장애 조성"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본이 이날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한 것과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
청와대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대응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의 연장 거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 결여와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해,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지소미아를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상응조치’로 지소미아 연장 거부 카드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이 발언과 관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소미아는 양국간 민감한 군사정보를 교환하는것을 기반으로 한 협정이다. 일본이 우리에 대한 신뢰가 없고 안전보장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지속할 수 있나”라며 “일본은 이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지소미아 파기로 한미일 안보공조가 무너질 우려가 있지 않나’라는 물음에는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며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다. 여러 차원에서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 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은 일본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대화를 제기했으나, 일본은 번번이 이를 거부하거나 사실을 왜곡해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차장은 “많은 분들이 왜 우리가 적극적으로 특사 파견을 하지 않느냐고 비판하지만, 이미 우리 정부 고위 인사의 파견은 7월 중 두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서로 다른 고위급 인사 2명이 일본을 찾은 것이라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김 차장은 “당시 우리 측 고위인사는 일본 측을 만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밝히는 데 왜 8개월이나 걸려야 했는지 설명하고 일측이 요구하는 제안을 포함해 모든 사안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관련 입장을 밝히는 데 8개월이 걸린 이유와 관련, “구체적 얘기를 밝힐 수는 없지만, 피해자의 변호인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의 노력도 있었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우선 “미국은 지난달 일본에서 한미일 고위급협의를 갖자는 제의를 했고, 한국은 이에 동의했지만 일본이 이를 거절해 무산됐다.

김 차장은 또 ”미국도 일시적으로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를 동결하고 일정기간 한일 양측이 외교적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하는 소위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standstill agreement)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며 ”우리는 긍정적 입장을 갖고 협의에 노력했으나, 일본은 즉각 거부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미국은 ‘중재’는 안했지만 ‘관여’는 했다. 지금도 미국은 관여하고 있다“며 ”미국이 7월 29일 한일 갈등이 지속되는 데 우려를 표하며 현상동결합의를 제안했고, 미국은 같은 날 일본 측에도 동일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한국은 이를 기초로 다음날인 7월30일 한국이 수출통제제도에 대한 설명과 정보공유를 위한 양국간 고위급 협의를 제안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몇시간 후에 일본은 우리 제안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김 차장은 또 한국이 수출통제제도를 국제기구에서 검증받자는 제안(7월 12일), 한국 산자부와 일본 경산성 담당 국장간 협의요청(7월16일), WTO 일반이사회에서의 수석대표간 일대일 대화 제안(7월24일)에, RCEP 장관회담 제안(7월27일) 등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제의가 계속됐음에도 일본이 일절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 차장은 일본을 향해 ”지난 수십 년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했던 한국을 안보상의 이유를 핑계로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은 우리에 대한 공개적 모욕“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김 차장은 또 ”일본은 평화프로세스 구축 과정에서 도움보다는 장애를 조성했다. 초계기 사건에서 보듯이 일본은 한일간 협력을 저해하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며 ”일본이 지향하는 평화와 번영의 보통국가의 모습이 무엇인지 우리는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마우지 경제체제’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마우지 경제체제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와 부품을 수입하면서, 한국이 완성품을 수출해도 이득은 일본에 돌아가는 체제를 뜻한다.

김 차장은 ”환경규제와 노동규제 문제를 해결하고 R&D 투자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정책감사도 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중화학 공업화 정책선언’으로 많은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우위를 극복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소재 부품산업 육성 전략’으로 부품산업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동북아 지역은 근현대사에서 하루라도 편한 날이 없었다“며 임오군란, 갑신정변,청일전쟁, 아관파천, 카쓰라-태프트 밀약,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 등의 예를 들고서 ”오늘 직면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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