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생은 한나라 경제 때 강직한 공직자였다. 경제의 어머니 두태후는 노자를 매우 좋아했다. 두태후는 원고생을 불러 “노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노자라는 자는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그의 말은 하잘것없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원고생의 대답에 화가 난 두태후는 원고생을 돼지 사육장으로 보내 돼지를 잡도록 했다.

경제를 뒤이어 황제에 오른 한무제는 관직에서 물러나 90세가 된 원고생을 다시 조정으로 불렀다. 당시 원고생과 같이 부름을 받은 학자가 60세의 공손홍이었다. 나이 적은 공손홍이 원고생을 깔보고 무시했지만 원고생은 개의치 않고 공손홍에게 충고했다.

“바른 학문으로 바른 말을 하는데 힘쓸 뿐 배운 것을 왜곡해 세상에 아첨하는 일이 없도록 하오.” 첫눈에 공손홍이 위선자임을 알아본 원고생은 그에게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처신을 삼가라고 경고한 것이다. 60세 늦깎이로 학술고문관에 임용된 공손홍은 한 때 무제의 눈 밖에 나 면직됐다가 70세에 다시 천거돼 그 후부터는 ‘곡학아세’로 일관, 승진을 거듭해 승상까지 올랐다.

공손홍은 황제 앞에선 얼굴을 붉힐만한 일이나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각의에서 사전에 의견이 통일된 사안이라도 황제가 불만스러운 낯빛을 보이면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황제의 의견에 맞장구쳤다. 그런 일로 동료들이 비난하면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기변명에 급급했다.

“나를 꾸짖는 것은 나라는 인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으면 나에게 한 점의 사심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대신들과 함께 황제에게 직언하기로 약속한 것도 정작 황제 앞에 가서는 낯을 바꾸어 황제의 말에 동조, 동료들을 배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공손홍의 위선은 하도 교묘해 학식이 있는 사대부조차도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곡학아세’는 자신이 배운 전문지식이나 학벌 따위를 미끼로 권력에 아첨하는 사이비 지식인 ‘폴리페서’가 대표적이다. 조국 전 수석의 대학 후배 정승윤 교수가 ‘곡학아세’란 글을 통해 조국을 비판했다. “국민을 가르치면서 훈계하려는 법돌이 권력자의 오만함에 기가 질린다” 무서운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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