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은
스스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다

누군가 탕탕 제 몸을 때려 주어야
그때야 비로소 쌓인 울음 쏟아 낸다

빗방울이 호두나무를 두들긴다
나뭇잎이 훌쩍훌쩍 소리 내어 운다

빗방울이 지붕을 마구 때린다
기왓장이 꺼이꺼이 목 놓아 운다

뒤란에서 깡통이 엉엉 울어 댄다

먼 데서 벙어리 길손이 마실에 찾아와
오도 가도 못하는 것들 울음보 터뜨렸다




<감상>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나 지붕은 울음을 오래 안고 있을 것이다. 그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 바로 빗소리다. 빗소리라고 울음이 없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자. 구름이 울음을 오래 참았다가 스스로 쏟아낸 것이 바로 비가 아닌가. 곧 비와 나무, 비와 지붕이 서로 슬픔을 껴안을 때, 자신을 비워주었을 때 엉엉 울 수가 있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먼 데서 아무 말 없는 벙어리 같은 길손이 찾아와도, 그리움이 가득한 그대가 찾아와도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울음보를 터트린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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