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 년 쇠죽을 잘 끓여 먹이고 나면 아버지는 송아지의 콧살
을 뚫어 코뚜레를 꿰었다. 대나무나 대추나무를 깎아 어린 소의 콧
구멍에 구멍을 낸 뒤 미리 준비해둔 노간주나무로 바꿔 꿰는 작업
이었다.

코뚜레는 단단했고, 어린 소의 코에선 며칠씩이나 선홍빛 피가
흘러내렸다. 소는 이내 아픈 코에 굳은살이 박였는지 오래지 않아
한결 유순하고 의젓한 소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놈을
몇 달 더 키운 뒤 일소로 밭에 나가 부리거나 제값을 받고 먼 시
장에 내어다 파는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사납고 무서웠던지, 오십이 다 된 나는 지금까지
코뚜레를 꿰지 못한 어린 소로 살고 있다. 누가 밖에 데려다 일을
시켜도 큰일을 할 자신이 없었거니와, 나 같은 얼치기를 제값 주고
사 갈 위인도 세상엔 없을 것 같았다.

삶이, 그것이 힘들어 앓아눕는 날이 많을수록, 막 코뚜레를 한
어린 소 한 마리 나 대신 엎드려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이 꿈에 자
주 보인다




<감상> 노간주나무를 베어다 불에 굽고 둥글게 굽혀서, 얼마간 걸어둬야 코뚜레가 탄생한다. 나무를 길들이듯 날뛰는 송아지를 코뚜레로 길들여 일소로 부리거나 제값을 받고 시장에 내다 판다. 일소로 남아있으면 한 식구가 되지만, 팔린 소는 영영 이별하고 만다. 어릴 적 시장에 팔린 소가 나를 보고 쫓아온 적도 있다. 나는 일소처럼 일을 척척 해내는 사회인이 되었는지, 제값 받을 스카우트 제안은 있었는지 회상에 빠진다. 삶이 힘들수록 막 코뚜레를 한 소처럼 피 흘리며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아직도 일소가 되지 못한 어린 소인가 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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