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치기 운전’에 항의하는 상대방 운전자를 어린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을 저질러 공분을 사고 있다. 폭행 이유가 화가 나서 우발적이었다고 하니 더욱 가관이다. 화나면 생각 없이 주먹을 휘둘러도 된다는 말로 들린다. 내 남 없이 운전대만 쥐면 모두가 짐승이 된다고 말들을 한다. 도무지 내 차 앞에 끼어드는 차를 용납할 수가 없으며 이를 항의하는 것도 참을 수가 없다. 교차로에서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경적을 울리고 경고등을 번쩍인다. 뒤차가 있든 말든 침을 뱉고,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버린다. 아이들 보기에 민망한 욕설이 오고 가는 일도 허다하다.

요즘에는 유행처럼 차량 뒤에 양보와 배려를 유도하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다니는 차량이 많다. 그런데 그 문구들을 보면 양보나 배려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뒤 따라 오는 운전자의 부아를 돋우려는 게 목적인 듯하다. 양보를 부탁하는 말은 정중해야 하며 겸손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전혀 생겨나지 않을 만큼 고압적이고 조롱 투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서로 웃자고 만든 문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그 정도가 지나치고 있다. 예의는 고사하고 조롱하는 문구를 볼 때면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뭘 봐? 초보 첨 봐?’ ‘짐승이 타고 있다’ ‘운전은 초보 마음은 터보, 건들면…’ 등. 뒤에 따라오는 운전자를 겁박하는 문구를 보고 있으려면 그 차량 운전자의 품격이 궁금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 사람이 운전자가 되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는 녹색 거인 헐크로 변화해 버린다. 운전자 간의 시비가 폭력으로 커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단 고함을 질러놓고 보는 게 우리네 모습이다. 이웃 간의 주차 시비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승용차가 들어온 게 1903년 고종 어차다. 이때부터 치면 우리 승용차 문화는 100년이 훨씬 넘었다. 1955년 국제차량공업사에서 만든 최초의 국산 자동차로 따져도 60년이 넘었으며, 승용차 일반화를 가져온 1962년 새나라 자동차를 기준으로 하여도 60년에 가깝다. 그야말로 운전 문화가 성숙할 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자동차만 가질 줄 알았지 운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갖지 못하고 있다.

속도를 늦추면 사고가 줄어드는 것도 맞는 말이다. 아울러 운전 예절을 지키면 자동차 사고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운전은 뻔뻔한 과시나 급하게 목적지까지 서둘러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 이동 수단은 우리의 삶을 더욱 안락하게 해 주는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므로 서로 오고 가는 배려와 양보는 필수적이다.

스티커 사용은 차량 운전자의 자유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울러 다른 운전자의 운전을 방해하거나 불쾌감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품격을 드러내는 것임도 알아야 한다. 도로 위에서 상대 운전자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이나 스티커 부착은 민주시민으로서 삼가야 할 덕목임이 분명하다. 이제 자동차에는 운전자만 타는 게 아니라 예절과 함께 타는 습관이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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