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손화철 한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한창이지만, 내 소비에는 큰 변화가 없다. 직접 소비할 일이 별로 없는 데다, 어린 시절부터 국산품 애용 교육을 열심히 받아서다. 특히 기억나는 건 좀 사는 집들에 하나씩 있다 했던 일제 코끼리 전기밥솥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린 나는 정말이지 너무 화가 났다. 그깟 밥솥이 좋으면 얼마나 좋다고 일본까지 가서 말이야….

몇십 년이 지나고 보니 온 국민이 이런저런 유혹을 참고 국산품 애용으로 키워준 대기업들이 자기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홀로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세습에 몰두하는 기업도 워낙 많으니 일단 한 곳만 불매하기로 했다. 불매하기로 한 기업의 제품은 경쟁사의 제품보다 더 싸고 좋아도 선택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홀로 불매운동은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버릇처럼 가짜뉴스를 내고 편파보도를 일삼는 한 언론사 뉴스는 제목만 보고 클릭하지 않으려 애쓴다. 가족들과 종종 이용하던 어떤 외식업체는 몇 년 전 아르바이트생을 체계적으로 괴롭힌다는 뉴스가 나서 다시는 가지 않는다. 갑질을 하다 입길에 오른 회사 비행기도 가급적 타지 않는다. 한 번 불매의 대상이 되면 반성하거나 시간이 지나도 그냥 계속한다. 홀로 불매운동이니까 남들에게 권하거나 대단히 홍보하지는 않지만, 매장에서라도 누가 “왜 이 제품은 안 사세요?” 하고 굳이 물어보면 말해 준다. “나쁜 회사니까요.” 아이들에게도 나쁜 회사가 불매로 망해야 다른 기업들이 정신을 차린다고 설명해 준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혼자 한다고 그게 될까?”다.

이 부분이 문제다. 불매운동은 사람이 많아야 성공한다. 시장에서는 보통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두고 공급자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지만, 공급자가 소비자가 불매를 피하는 경쟁은 약간 복잡하다. 소비는 개인적으로 일어나도 공급자의 이익이 되는 반면, 불매는 여럿이 함께해야 힘을 생긴다. 그래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처럼 여러 사람을 설득할 만한 공동의 가치가 있는 경우가 아니거나,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적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그래서 자주 시도하지도 않고, 혼자 하려면 힘이 빠진다.

하지만 불매운동은 시장의 정상적인 작동에 고차원적인 가치를 더하는 안전한 방법이다. 어떤 힘이든 행사하다 보면 지나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지만, 불매운동은 자기 이익을 일부 포기하는 것이므로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거의 없다. 각자 공동체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두고 홀로 불매운동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의외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그 품질뿐 아니라 그것들을 생산하고 제공하는 이들이 얼마나 도덕적이고 친환경적이며 법을 충실하게 지키는지를 함께 판단한다면 불매운동은 더 자주, 더 다양한 이유로 일어날 것이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유권자 눈치를 보니까 강제로 개선할 여지가 없어 고민이지만, 불매운동은 정해진 시간도 없으니 시장을 선한 방향으로 길들이는 좋은 방법이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은 혼자 한들 뭐가 변하겠나 하며 지레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혼자가 여럿이라는 믿음만 공유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장과 사회가 더 맑아지지 않을까.

요즘 우리나라는 작고 약하니 억울해도 가만히 있는 것이 냉정하고 합리적이라는 지식인들이 많다. 미욱한 내게는 소비에 가치를 더하려 애써봐야 소용없다는 타박과 원리상 동일해 보이지만, 국제정치의 복잡한 판단이야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나는 홀로 불매운동만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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