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道라는 아청빛 시간에 푹 젖었다 왔다
시인인 나를 부러워하는, 나보다 더 시인다운 농부를 만났다
소들이랑 한 식구처럼 살고 있었다 소를 닮아 눈망울에
초겨울 저녁 검푸른 물빛 하늘이 출렁출렁 담겨 있었다
마들이라는 두꺼운 시간 속에 아청빛 시인이 살고 있다
간판들이 켜질 무렵 얽매이지 않는 말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다
도봉산 겨울 능선 위 저녁 하늘빛이
노시인의 눈에 흘러내릴 듯 가득 차 있다
광주 진월동에는 이른 새벽부터 푸른 저녁까지
편백나무로 시를 짜는 목공이 있다
총알이 스친 다리처럼 시리지만
옷깃을 여미게 하는 묘한 빛깔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말에 찔리고 베여 갈라터진 이 땅 어디에서도
붕대 같은 저녁이 찾아오듯이
시의 순간만큼 짧은 아청빛 시간이 왔다 간다




<감상> 청도(淸道)라는 지명이 푸른빛으로 가는 길이자 시간이었군요. 거기에 소의 눈망울을 닮은 시인다운 농부를 만나 아청빛에 젖어듭니다. 소눈망울을 지닌 사람은 어슬녘 아청빛이 담겨있을 것이고, 얽매이지 않는 말들을 풀어 놓으니 당연히 시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목공도 새벽과 저녁의 파랑 속으로 빠져들므로 시를 짜는 것과 같습니다. 말을 꾸며내고, 말에 찔리고 베이는 도시사막에서는 아청빛을 눈동자에 담아낼 수 없기에 흘러내릴 뿐입니다. 어슬녘 빨강 뒤에 오는, 새벽녘 먼저 찾아오는 짧은 아청빛 시간이 바로 시적 순간이죠.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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