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지난 22일 청와대가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발표한 후 가장 민감하게 대응해온 나라가 당사국인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다. 미국이 앞으로 대한국 방위전략을 어떤 방향으로 해나갈지 주목이 되고 있다. 지소미아 파기 발표 직후 미 국방부 이스터번 대변인은 “문 정부(Moon Administration)가 군사정보보호협정 갱신을 보류한 것에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문에서 동맹국인 ‘한국 정부’라는 호칭 대신 ‘문 정부’라고 적시한 것부터 청와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같은 날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캐나다에서 “한국 결정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도 이날 “이번 결정은 동북아에서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안보 도전에 대한 문 정부의 심각한 오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동맹국간에 이견이 있을 경우 ‘실망’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외교적 관례를 볼 때 미국 측의 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있다.

지소미아 파기 발표가 있은 지 하루가 지난 23일에는 침묵하고 있던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지난 25일 프랑스에서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은 완전한 돈 낭비(a total waste of money)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앞으로 한미연합훈련을 하려면 한국 정부가 모든 비용을 지불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연합훈련은 앞으로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한국에 대한 동맹이라는 의미가 이번 사태로 금이 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트럼프가 한·미 연합훈련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해온 적은 있으나 ‘돈 낭비’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동맹 간 훈련을 비하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트럼프가 연합훈련 무용론을 제기한 것이 이달 들어 세 번째다. 다음 달 시작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두고 대폭적인 증액을 요구할 태세로 보인다. 지난달 방한한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청와대에 48억 달러 규모의 주한미군 비용 명세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미 측이 지소미아 파기와 방위비를 연계할 개연성도 높아 보인다. 이처럼 미국 측의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실망감과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28일 해리스 미국대사를 ‘초치’해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소미아 파기로 한·미 간 파열음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외교 안보 관련 학자들도 “지소미아 파기에 일본보다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일·한 3국 안보 공조를 건드린 것은 문정부 최대의 패착”이라고 했다. 지난 27일에는 66명이 참여한‘나라사랑 전직외교관 모임’은 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대해 “즉각 철회하라”며 “5200만 국민이 마치 공중 납치된 여객기의 승객 같다”고도 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도 “지소미아 파기는 1905년 일본과 을사조약 체결 이후 한국 정부의 가장 ‘큰 전략적 오산’(the greatest strategic miscalculation)”이라고 지적했다. 지소미아 파기 후 청와대 측은 “그동안 미국과 소통을 많이 해 왔으며 미국도 파기 결정을 이해했다”고 발표를 하자 미 국무부는 “거짓말”이라고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예상을 뛰어넘는 미국 측의 반응에 청와대 측은 “미국도 많은 실망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해명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미국의 한국 방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미군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라며 문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미국 측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이 있기 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등이 방한해 동북아 안보를 위해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하지 말 것을 한국 정부에 만류했다. 청와대의 지소미아 파기로 한미동맹이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미·일 공조체제에 균열이 생겨 한국이 여기에서 이탈하는 사태가 생기면 동북아에는 69년 전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동해를 경계선으로 한 대륙봉쇄 라인으로 선언했던 ‘애치슨라인’이 ‘트럼프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할 우려도 있어 보인다. 미국과 일본은 애치슨라인과 같은 전략적 전개를 예상하고 인도를 포함한 태평양-인도양에 걸친 중국봉쇄 전선을 도모하고 있으나 한국은 여기에 동참하기를 계속 머뭇거리고 있다. 도대체 문재인정부는 한국의 안보를 앞으로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국민들은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