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소나기 가득 안고 뛰어오는 먹구름처럼 마음
잔뜩 젖은 채 발가벗은 몸으로 내 심장에 와락 뛰어든
너, 너라는 너의 붉은 뺨, 그대의 문장이 이 칠흑 같은
하늘에 두둥실 박혔어. 그리움은 타인의 이불 위로 자신
의 몸을 살포시 눕혀 보는 것일지 몰라. 한 생애를 달려
와 마침내 태양을 삼킨 저 달처럼, 가쁜 숨 내쉴 틈 없이
작열하는 태초의 시간 앞에서 사지를 펼치고 누워 있는
절름발이 연인, 내 몸 온전히 찢어 덮어도 품을 수 없는
하루를 세어 보는 저녁, 난 오늘 당신의 이마에 이마를
맞대고 한동안 깨지 않을 합집합을 꿈꾼다.




<감상> 마음이 잔뜩 젖지 않으면, 내 몸 발가벗지 않으면 그대가 오지 않는군요. 그대의 문장이라고 표현해야 할 시(詩)라는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나의 시어가 칠흑 같은 하늘에 박혀있기에 타인의 이불에 자신의 몸을 눕혀보는 것일 테죠. 그대를 진정 사랑한다면 한 마디의 말도 옮길 수 없기에 그리움에 애타지도 모릅니다. 온 생애를 달려와 태양과 몸을 포개는 달처럼, 그렇게 될 수 없는 관계이기에 절름발이 연인이죠. 내 몸 온전히 찢어 덮어도 품을 수 없는 사랑은 얼마나 슬픈가요. 하지만 그리움 하나만으로 당신의 이마에 이마 맞대고 깨지 않을 합집합을, 곧 완성될 하나의 시를 꿈꿉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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