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최근 한 고위 공직자의 임명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그의 ‘과거’ 문제가 온 나라를 들끓게 했습니다. 직무 수행과 관련된 능력 검증보다는 정파적 관점에 토대한 이념 검증, 도덕성 검증에 치중했고 또 그 결과에 온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것 같습니다. 후보자 본인과 가족, 친지들의 과거 행적이 샅샅이 미디어를 통해서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분노, 동정, 공포, 실망, 연민의 감정이 그것들과 함께 했습니다. 한 달여의 검증 기간 동안, ‘모세의 기적’이 나타난 홍해 바다처럼, 민심이 완전히 상반되는 두 갈래 방향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엄청난 집단 에너지의 손실이었습니다. 특히 세대 갈등, 계층 갈등 측면에서는 큰 상처를 남기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후보자 본인이나 그를 임명한 대통령이나, 그런 손실과 상처를 보상하고도 남을 뚜렷한 ‘선택의 성공적 결과’를 책무로 지게 되었습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엄격하고 세밀한 공직 후보자 검증 과정을 보면서 공연히 저의 과거를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시골 서생의 입장에서 쓸데없는 일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의 자리에 저를 한 번 앉혀 봅니다. 그동안 어떤 기본적인 심사(心事)를 가지고 살아왔는지(이기심과 이타심의 배분 등), 말과 행동에는 얼마만큼의 괴리가 있었는지, 학자적 양심과 직업적 윤리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물질적 욕망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등등을 살펴봤습니다. 흔히 하는 농담입니다만, “높은 곳에서 (한자리하라는) 전화가 올까 봐 두렵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옛날 한 소설의 서두로 썼던 어린 시절 추억의 한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혹시 오늘의 주제인 ‘과거’에 한 점 유용한 예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거울면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오목인지 볼록인지, 혹시 깨진 거울은 아닌지, 그것부터 살피는 게 우선일 것입니다.

…이곳의 살림살이는 오직 생존 그 자체였다. 생존을 위한 각축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체면, 여유, 양보, 도의(道義)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었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신작로와 그 주변의 골목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선녀집, 보살집, 동자집, 장군집 등 형형색색의 점집 간판들과 역한 냄새를 풍기는 건강원(뱀탕집)들,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들어서 있는 선술집과 서민식당들, 마치 서부 개척시대의 역마차나 되는 양 보무도 당당하게 늘어선 복개천 위의 고래고기 포장마차들, 그리고 이재민 수용소로 사용되곤 하던 공원 담 아래의 넓은 빈터, 밤마다 불량소년들의 아지트로 이용되던 대나무 야적장.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디에도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교실은 없었다. 자라난 환경을 무시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재수 없으면 복개천 빈틈 사이로 대책 없이 굴러떨어져야 했고, 복면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형집을 털다 잡힌 고등학생이 오랏줄에 묶인 채 현장검증을 받는 것도 봐야 했고, 힘 떨어진 양아치(넝마주의라고 부르던) 대장이 자기가 주어다 키운 넘버 투에게 비참하게 얻어터지는 광경도 봐야 했고, 오래 앓던 남편이 죽고 그 다음 다음 날로 뜨내기 남정네와 한 살림을 꾸리는 독한 과부도 봐야 했다. 인간은 오로지 환경의 작품이다. 그를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는 소이를 우리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저 정글 속의 짐승, 그 자체였다. 웬만한 대낮 술주정꾼의 주사(酒邪)나 시시때때로 담 너머로 흘러나오는 아낙들의 비명 섞인 악다구니 같은 것들은 차라리 꿈의 교향악과 같은 것들이었다.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비참하게 황홀하기까지 했던 풍경 아래서 우리 어린 짐승들은 공부도 하고, 싸움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구슬 따먹기도 하고, 연애도 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