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 바람으로 뛰쳐나가 5층 창틀에 매달린 딸 같은 이웃 구조

12일 오전 4시 21분께 광주 광산구 송정동 한 아파트 5층 주택에서 불이 나 50대 부부가 숨지고, 부부의 자녀와 이웃 주민 등 4명이 다쳤다. 사진은 불이 난 아파트 건물 밖으로 대피한 주민들의 모습. 연합

추석 연휴 첫날 광주 광산구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을 구한 의인 정신이 발휘됐다.

12일 다수 광산구 주민에 따르면 이날 새벽 불이 난 아파트 맞은편 동에 거주하는 양만열(46) 씨가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 창틀에 매달려 있던 20대 여성을 구했다.

불이 난 아파트 5층에서는 집주인 A(53)씨가 보일러실 창턱에 상반신을 걸치고, 바로 옆에서는 그의 딸(22)이 맨손으로 창틀을 붙들고 매달린 채 연기를 피하고 있었다.

소방차 사이렌과 ‘불이 났다’는 외침에 잠에서 깬 양씨는 베란다에서 바깥 상황을 살피다가 추락 위기에 처한 A씨 부녀를 발견했다.

양씨는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가 불이 난 아파트 아랫집 보일러실까지 연기를 헤치며 진입했다.

보일러실 창틀 위로 올라선 양씨는 배관을 발로 디디며 간신히 버티고 있던 A씨의 딸을 단숨에 건물 안으로 잡아당겼다.

A씨 딸은 양씨 덕분에 왼쪽 다리에 화상만 입은 채 무사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양씨는 A씨도 마저 구하려고 5층까지 진입을 시도했으나 그사이 A씨는 집 밖으로 추락해 숨졌다.

양씨는 당시 상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며 “A씨의 딸을 구하는 과정에서 A씨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가 아래쪽을 향하고 있길래 위로 올라가 잡아당기려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양씨는 이날 자신이 구한 A씨의 딸과 비슷한 나이대인 딸을 키운다.

그는 ‘무섭지 않았냐’는 기자들 질문에 “내가 최소 한 사람쯤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착잡한 표정으로 답했다.

잠옷 바람으로 구조에 나선 양씨의 몸 곳곳에는 창틀 등에 긁힌 상처가 남아있었다.

양씨뿐만 아니라 건물 밖으로 몸을 피한 주민들도 위험에 처한 이웃을 구하려 동분서주했다.

주민들은 A씨 부녀가 매달려 있던 창문 아래쪽 화단에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통이 가득 찬 마대 자루를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가져다가 쌓았다.

A씨가 화단 옆 콘크리트 처마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이웃들의 노력은 허사가 됐으나 성숙한 시민의식은 위기에서 빛났다.

이날 오전 4시 21분께 발생한 화재 당시 A씨 아파트에는 부부와 자녀, 아들의 친구 등 모두 5명이 머물고 있었다.

아들과 친구는 아파트 화단으로 뛰어내려 구조됐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안타깝게도 A씨의 부인은 집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피난 과정에서 넘어지거나 연기를 마신 주민 10명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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