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중국 춘추 시대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은 최고의 병서로 일컫는다. 영웅 나폴레옹이나 명장 맥아더가 애독자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다. 전쟁을 치르는 방법뿐 아니라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책략을 접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 손자병법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명저는 ‘삼십육계’이다. 교전 수행에 필요한 전술 36개를 담았다. 제1계 ‘만천과해’부터 제36계 ‘주위상’까지 다양한 계책이 펼쳐진다. 흔히들 장난처럼 내뱉는 ‘삼십육계 줄행랑’은 제일 마지막 하책이다.

‘성동격서’는 제6계에 해당한다. 글자 그대로 소리는 동쪽으로 내고 실제론 서쪽을 공격하는 기만술. 초패왕 항우와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놓고 건곤일척 싸움을 벌일 때의 고사가 출전이다. 동서고금 쟁투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 계략이기도 하다. 의도는 숨기고 상대를 속여서 승리를 도모하는 전략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 작전도 유사한 공식에 대입된다. 독일군 수뇌부는 프랑스 해안의 노르망디와 칼레를 놓고 연합군 공격로를 저울질했다. 특히 가상의 부대와 전차를 배치한 칼레를 예의 주시하면서 이곳 방어에 주력했다. 하지만 숙고의 예상과 달리 연합군은 노르망디를 선택하였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나치 독일은 치명타를 입었고 패전의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세상에 잊힌 진실만큼 슬픈 과거는 없다. 세월의 흐름은 망각을 당연시하나 당자는 억하심정으로 자신을 외친다. 우리 지역 영덕의 장사 상륙 작전도 그러하다. 역사는 인천 상륙 작전을 기억하고 격찬한다. 수많은 학도병이 희생된 ‘장사리 비극’은 맥아더를 빛낸 조연의 거룩한 그림자였다.

푸르른 망망대해가 아스라이 펼쳐지고 기암괴석과 백사장이 천혜의 절경을 이룬 영덕. 포항을 지나 7번 국도를 가노라면 장사 해수욕장이 나온다.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바닷가. 상큼한 낭보가 아닌 옷깃을 여미게 하는 사연이다.

울창한 솔숲이 그늘을 드리운 해변의 모래밭. 한쪽엔 ‘장사상륙전 전몰용사 위령탑’이 세워졌고, 동해를 응시하며 아픈 자취를 일깨운다. 그래선지 파도의 포말을 향한 알몸의 환호보다는 숙연한 매무새가 다소곳 어울린다. 잠깐 그런 마음을 갖는다. 하여 약간은 서럽고 애달픈 분위기.

한국 전쟁의 분수령인 인천 상륙 작전 또한 성동격서의 모범이다. 그 상륙전 하루 전날인 1950년 9월 14일 오전 4시 30분, 대구와 밀양에서 모집한 학도병 772명을 태운 LST(문산호)가 장사 연안에서 작전에 돌입한다. 인천 상륙 작전의 지원을 위한 양동 작전의 일환이었다.

한데 문산호는 악천후로 장사 근해에서 좌초돼 침몰하였다. 뒤이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학도병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당했다. 매년 9월 14일이면 여기서 위령제가 거행된다. 수년 전 내빈으로 행사에 참석해 생존자와 얘기를 나누고 식사도 하였다.

전쟁의 상흔이 얼룩진 장사리 앞바다에 서면 처연한 감회에 젖는다. 어딘가 바닷속 심연엔 녹슨 선체가 갯벌에 파묻혀 있으리라. 그 처절한 절규를 아는지 모르는지 물결은 가없이 철썩이고, 갈매기는 비상의 울음을 우짖는다.

민간인 신분으로 장사 상륙 작전에 참가해 전사한 문산호 선원들. 그들에게 69년 만에 화랑 무공 훈장이 수여됐다. 만시지탄이나 다행이라 여긴다. 공사 관련 소송 문제로 수년째 방치된 호국 전시관도 하루속히 정상화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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