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서 14차에 걸쳐 척자점(擲字占)을 친 결과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장군이 본 그 척자점은 윷점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척자점법에 보이는 64조의 윷 점사(占辭·점괘에 나타난 말)는 주역의 64괘 배열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64괘와의 관련 속에서 점사의 의미를 추정해볼 수 있다. 윷점은 중국에서 유래한 점법이 아니고, 그 점사 속에는 ‘승려가 환속하다’나 ‘가난한 이가 보물을 얻었다’와 같은 것처럼 조선시대의 민간 풍속이나 정서가 담겨져 있는 것이 많다. 윷점은 양반계층이 아닌 우리의 민간에서 생성되고 유전된 간이화되고 독자적인 주역 점법의 한 편린이라 볼 수 있다. <임채우, 『난중일기』 擲字占의 易學的 의미>

학창 시절, 이순신 장군이 전란의 와중에서 수시로 점을 봤다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전연 뜻밖의 사실이었습니다. “점은 미신이다”라고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는데 전신(戰神)으로 추앙받는 성웅(聖雄) 이순신이 미신의 신봉자였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산 정약용의 글도 읽게 되고(주역 관련 저술이 있습니다) 또 주역 읽기 모임에도 몇 차례 참여해 보면서 그때의 충격이 많이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선비들에게 있어서 점은 앞으로 닥칠 운세를 미리 한 번 엿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해야 하는) 수신과 제가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난세를 만나 간고(艱苦·힘들고 어려움)한 처지에 놓여 있을수록 점을 보고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충무공이나 다산이나 다 그런 이유에서 점을 가까이했던 것입니다.

저도 마음이 심란할 때면 한 번씩 주역을 봅니다. 점사에 해당하는 괘사나 효사를 제 마음을 읽는 거울로 생각하고 이리저리 반성적으로 읽어봅니다. 괘를 하나 뽑아서 그 해석 중에 특별히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나 없나를 살핍니다. 더 나아갈 욕심은 내지 않고 딱 그 정도만 합니다. 주의할 것은 그 반성적 독서 가운데서도 반드시 나의 욕심과 기대가 잠입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름이 끼고 천둥은 치지만 비는 아직 안 온다”라는 구절을 보고 “때가 무르익었으니 이제 곧 기회가 온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조만간에 큰 비가 올 조짐이니 단단히 대비하라”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연한 실패를 면합니다. 법무(法務)와 관련한 일로 나라 안이 어수선한 요즘 제가 뽑은 점괘는 산수몽(山水蒙)입니다. 산 밑에 위험한 물이 있는 위태한 괘상(卦象)입니다.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지몽매함을 제거하면 능히 건강한 성장과 형통을 이룰 수 있다. 몽매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는 앉아서 기다려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요청할 때 하늘이 몽매함을 없애준다. 하늘에게 물어보기 위해 점을 칠 때, 처음 나온 점의 결과는 알려주지만 계속해서 물어보면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느라 분주한데 아침부터 집사람한테서 한 소리를 듣습니다. “두 번 말 안 한다”라고 엄하게 꾸짖습니다. 커피 끓여 놓았으니 가져가라고 말했는데 뭐하느냐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두 번, 세 번 하면 모독함이니, 모독함에는 알려주지 아니한다(再三瀆, 瀆則不告)”를 또 배웁니다. 그 한 말씀에 몽매한 이가 되어서 단숨에 계몽되었습니다. 산수몽(山水蒙), 괘의 형국이 산 아래 물이 있는 위태위태한 모양이라 하니 한시도 몽매에서 벗어나기를 지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은 두 번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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