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어리석고 철이 없는 아이라는 뜻’으로 돼지 돈(豚)과 아이 아(兒)를 붙인 ‘돈아(豚兒)’라 했다. ‘돈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양반들이 흔히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 했는데 너무 심한 겸칭(謙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요즘도 잘난 정치인들이 잊을만하면 국민을 ‘개 돼지’에 비유하는 것을 보면 심한 말도 아니지 싶기도 하다. 

돼지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에서 특별히 친숙한 동물이다. 한자어 집 가(家) 자만 봐도 지붕 아래에 돼지(豕·돼지 시)가 드러누운 형상이다. 돼지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남성들이 주로 가는 이발소 벽에는 암퇘지가 드러누워 10여 마리나 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키치(Kitsch)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머리를 깎는 내내 돼지 새끼 수를 센 적도 있었다. 돼지는 재복(財福)의 상징이기도 하다. 돼지 꿈을 꾸면 재물이 들어온다 해서 복권을 산다. 

돼지는 풍부한 영양분을 주는 고마운 가축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시인 소동파가 즐겼다는 푹 삶은 돼지고기 요리 ‘동파육’과 돼지 넓적다리를 염장해 2~3년 숙성시킨 ‘훠투이’ 등 다양한 요리들이 있다. 중국 요리 이름에 ‘러우(肉)’가 붙은 것은 돼지고기 요리다. 중국인들은 돼지 등심을 최상육(最上肉), 뒷다리 살을 상육. 어깻살을 중육, 삼겹살을 하육으로 친다.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삼겹살을 하육으로 친 것은 중국인들의 요리가 대부분 기름에 튀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돼지가 몰살될 지경이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8월 북부 랴오닝성에서 처음 돼지 흑사병으로 불리는 돼지열병이 발생한 이후 9개월여 만에 전국에 확산돼 1억3000만 마리의 돼지가 땅에 묻혔다. 이렇다 보니 중국 요리의 주 재료인 돼지고기 값이 폭등했다. 지난 2월 1㎏에 18위안 하던 것이 이달에는 35위안으로 90% 이상 뛰었다. 돼지고기 구매량을 제한하고, 한 정육점에서는 핏물이 흐르는 돼지고기 토막을 슬쩍 호주머니에 훔쳐가려던 사람이 잡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경기도 파주에 이어 연천에서 치사율 100%라는 돼지열병이 발생했다. 벌써 돼지고기 값이 폭등하고 있다. 이러다 서민들이 좋아하는 삼겹살도 못 먹게 생겼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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