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독일 뤼네부르크 지방법원에서 역사에 기록될 판결이 나왔다. 이날 법원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나치 친위대(SS) 경비병으로 복무했던 오스카 그뢰닝에게 30만 명의 학살을 방조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뢰닝은 수용자들에게서 압수한 금품을 계산하는 역할을 해 ‘아우슈비츠의 회계원’이란 별명이 붙여져 있었다. 94세의 그뢰닝은 재판에서 자신이 ‘도덕적 공범’임을 인정하고 “아우슈비츠는 어느 누구도 협력해야 할 곳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좀 더 일찍, 더 뼈저리게 깨닫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뉘우친다”고 참회의 진술했다.

그뢰닝 재판은 2015년 4월 그를 1944년 5~7월 가스실 집단학살을 자행한 나치의 공범으로 간주한 독일 검찰의 기소로 시작됐다. 검찰이 누군가를 나치 전범으로 기소하려면 피고가 특정인의 죽음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지난 1985년 당시 프랑크푸르트 검찰은 그뢰닝을 나치 공범으로 조사하다 증거 부족으로 중단했다. 늦게나마 정의가 실현된 그뢰닝의 재판은 나치 전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찰이 19일 강간 살인죄로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이재춘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 가운데 5, 7, 9차 사건의 유력 용의자라고 발표했다. 1990년 11월 일어난 9차 사건 피해자 속옷에서 채취된 DNA가 이재춘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찰의 발표와 추궁에도 이재춘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이재춘이 진범으로 확정된다 해도 공소시효가 2006년 4월 2일 끝나서 처벌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는 공소시효기간이 정해져 있다. 지난 2015년 7월 25년으로 돼 있던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일명 태완이법이 제정됐다. 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 골목길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사망 당시 6세)군이 누군가의 황산테러로 49일간 투병하다 숨진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을 계기로 제정됐다.

하지만 화성연쇄살인 사건이나 대구 개구리소년 살인 암매장 사건과 같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라도 범인이 밝혀지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단죄해야 한다. 전범(戰犯)만큼 잔악한 살인범죄에 공소시효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논설주간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