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망가진 비닐하우스·농작물 등 수습하며 한숨만

23일 태풍 타파의 영향권에 들어가 밤새 시달리던 포항지역의 곳곳에 피해가 발생했다. 포항영일대해수욕장에 밤새 파도가 가져다놓은 쓰레기가 넘치고 있다. 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올해도 빚만 쌓이네요. 왜 귀농을 마음먹었는지, 제 자신이 밉습니다”

태풍 ‘타파’가 지나간 23일 오전 포항시 남구 연일읍의 한 비닐하우스 단지.

쌈 채소의 일종인 ‘방풍’을 키우는 김모(50)씨는 상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에 잠겨 뿌리째 썩어버린 방풍나물을 뽑아내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5년 전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하고 귀농한 김 씨의 시름은 올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는 “추석 연휴가 끝날 무렵부터 비가 자주 내려 생육이 좋지 않더니 결국 태풍까지 겹쳐 올해 농사를 망쳤다”며 “빚이 계속 늘어 농사일을 그만둘지 진심으로 고민된다”고 참담함을 토로했다. 이어 “사과·배·벼·부추 등 전국적으로 널리 생산되는 작물은 농작물재해보험에 들 수 있지만, 생산량과 생산 농가의 수가 비교적 적은 방풍은 가입 대상 품목에 속하지 않아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가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주말 간 220㎜가 넘는 비와 강풍이 몰아쳐 망가진 비닐하우스와 농작물을 수습하는 농민이 내뱉는 탄식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진모(63·여)씨 또한 강풍으로 뜯어진 하우스의 비닐 잔해를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태풍으로 약 7800㎡ 규모인 진 씨의 비닐하우스 20동 중 절반 이상 피해를 봤다. 다음달 말부터 부추·방풍을 수확할 예정이던 진 씨의 계획은 작물들이 파손된 하우스에 들이친 비로 손을 써보지도 못한 채 죽어버린 탓에 ‘올 농사는 망쳤다’고 넋두리를 했다. 진 씨는 “지난해도 태풍 피해 때문에 빚을 내서 올해 농사를 준비했는데, 1년 동안 해온 고생이 물거품이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포항시 북구의 상황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이날 북구 흥해읍 성곡리 등에는 금속재질 주택 지붕이 강한 바람에 날아가 전깃줄과 전신주를 파손하거나 논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북구 장성동의 한 마트에서는 바람으로 떨어진 대형 간판을 보수하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지붕이 떨어질 때 인근에 사람이 있었다면 어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뿐만 아니라 기계면 등의 논에는 쏟아진 비로 다 익어가던 벼가 모두 쓰려져 다가오는 주말 일가친척이 모여 다시 벼를 세우기로 했고, 신광면의 밭에도 수확기 배가 떨어져 나뒹굴었다.

영일대해수욕장을 비롯한 해안가도 지난밤 태풍 위력을 짐작하게 했다.

북구 두호동과 환여동을 잇는 환호공원 인근 해안도로에는 여전히 매우 거센 파도가 방파제와 도로를 때리면서 거대한 거품으로 변해 인도를 뒤덮는 모습이었다.

영일대 해변과 백사장에는 성난 파도가 백사장을 계속 위협하는 가운데 해초와 부유물, 해안 쓰레기 등을 치우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한 할머니는 “힘 있는 젊은 장병들이 빨리 오면 한결 일이 수월할 터인데 손길이 아직 없어 아쉽다”고 하소연했다.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이번 태풍은 경북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경주 양북면 어일리 대종천 변 국도 14호선 100m가 유실됐으며, 양남면 하서리 해안도로 150m가 유실되면서 방파제 옹벽 180m도 무너졌다. 특히 강풍으로 최근 명소로 떠오르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주상절리 전망대 외부 마감재도 뜯겨 나갔다.

군위군에는 강한 바람을 동반한 태풍 피해로 벼 21.5㏊, 사과 2.2㏊ 등 21 농가에서 총 21.5㏊의 농작물 피해를 입었다.

영덕에서는 이번 태풍으로 경정해수욕장에 떠 있던 어선 2척이 좌초됐고, 1척은 항 내에 표류했다.

남정면 등 곳곳에서는 나무가 넘어지거나 지붕이 파손되고 정전과 낙석 피해도 발생했다. 또 축산 수산물 공동 가공센터 축산폐수펌프장 1동은 침수됐고, 강구항 개발사업장 등에서 등부표도 유실됐다. 농작물은 지품·영해면의 사과 과수원 100㏊가 피해를 입어, 17%의 낙과율을 보였고, 병곡면 지역 배 과수원 15㏊에서 낙과 피해를 생겼다. 시금치와 방풍 재배 농가 역시 10㏊의 침수 피해를 보았다.

군 관계자는 “논 전체 면적인 1944㏊의 약 4%에 해당하는 80㏊가 잠긴 것으로 현재 잠정집계되지만, 실제 피해 면적은 25%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울릉군에서는 일주도로가 월파로 인해 부분 통제를 했고, 도로 구간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경북도에 따르면 23일 오후 2시 현재까지 태풍으로 도내 585.9㏊에서 벼가 쓰러지거나 과일이 떨어진 것으로 잠정집계됐으며, 농업 관련 시설물 20.8㏊에서 피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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