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자유기고가
이상철 자유기고가

아이돌 그룹이 글로벌 음악차트를 휩쓸어도, 세계적인 가수가 내한공연을 해도, 노래방 애창곡 순위 상위권은 늘 트로트가 휩쓴다.

뿐만 아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선 늘 트로트 음악이 흐르고,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트로트는 무의식적으로 따라 부르게 만든다.

트로트 특유의 ‘꺾기음’은 마치 삶의 어려움을 인내하는 것처럼 들리고, 반복되는 강약의 박자는 인생 새옹지마를 알게 하며, 흘러나오는 ‘후렴음’은 삶을 달관한 이의 미소를 연상케 한다.

트로트의 어원인 ‘TROT’은 ‘빠르게 걷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등을 뜻한다.

그래서일까?

나른하고 뭔가 축 처진 기분이 들 때, 왠지 모르게 서글프고 외로워질 때, 트로트 가락은 심장을 뜨겁게 만든다.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 아침이나, 야근하고 나온 쓸쓸한 퇴근길에서 듣는 트로트는 에스프레소보다 각성이 뛰어나고, ‘인생 별거 있나’라는 마음이 들게끔 하는 진통제 역할도 한다.

어릴 때 트로트는 단지 부모님 세대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그러나 시행착오가 많았던 사회 초년병 시절, 이 시대 직장인으로 다시 태어나게끔 하는 통과의례처럼 출·퇴근길이나 출장 갈 때, 어김없이 내 차안에는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끔은 구슬픈 가락에, 때로는 인생을 녹아 담은 가사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져, 서러운 마음을 대변하듯 눈가에 눈물도 맺히게 했다.

빌 게이츠는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트로트를 듣는 순간만큼은 가수 송대관의 ‘네 박자’ 노래 가사처럼 ‘내려 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다’.

그렇다.

내려 보는 자나 올려 다 보는 자나,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는 트로트 가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거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가수 김연자가 대학 축제 단골손님이 된 이유도 노래 ‘아모르 파티’의 가사가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산술적으로 나오지 않는 내 집 마련의 기회와 언제 할지 모르는 취업, 그리고 나날이 높아져만 가는 ‘스펙’, 그리고 어학연수나 자원봉사의 부담까지… 가장 아름다워야 할 청춘의 시간은 미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번제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김연자가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라고 외치는 순간, 대학 축제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해버린다.

미래를 위해 희생했던 과거를 치유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담보 잡힌 현재의 시간을 단 한 순간만이라도 즐기자는 ‘아모르 파티’의 구호는 마치 주문처럼 느껴진다. 또, ‘당장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행복하자고, 눈물이 날 만큼 서럽고 두려운 마음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자고,’ 다짐을 하게 만든다.

트로트 가수에게는 아이돌 스타가 가지는 글로벌 수준의 인기와 팬덤은 없다. 다만, 삶의 밑바닥부터 경험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노래로 투영될 때, 거기서 느껴지는 삶의 리얼리즘은 오로지 트로트에게만 허용되는 ‘삶의 훈장’인지도 모르겠다. 3년, 5년은 기본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유행하는 트로트는 어느새 소리소문없이 5천만 국민들을 따라 부르게 만들고 울고 웃게 만든다. 그것이 ‘트로트의 힘’이 아닐까? 어쩌면 노래 ‘네 박자’ 가사처럼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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