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빛도 닿을 수 없는
바닥에 내려가 산다 했어요
심장의 열수 분화구를 식혀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요
우울도 지그시 수압으로 눌러놓고
텅 빈 눈의 유령 상어처럼 떠돌다 보면
이따금 내려앉는 기억의 사체들
물컹한 살점이나 뜯으면서
시간의 색깔은 의미가 없다 했어요
그래도 목숨은 즐거움을 원해서
몸을 켰다가 껐다가 발광 놀이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 놀이,
암흑의 바다가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뭍으로 돌아갈 수 없다네요
결 고운 바닥에 어서 뼈를 내려놓는 게
지금의 유일한 희망이라 말하는
그는 심해를 사는 사람, 돌아서는 등에
날선 지느러미가 돋아 있었어요




<감상> 자신을 납작 엎드리기 위해서는 심해어가 될 수밖에 없어요. 열수(熱水)를 뿜어내는 분화구 같은 심장을 식히기 위해, 우울을 수압으로 눌러놓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지요. 누구나 바다에서 넙치같이 결 고운 바닥에 뼈를, 아집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살고 싶은 꿈은 갖고 있을 테지요. 그러면 우울증이 없어지고, 죽음까지 익숙해지고 즐거움도 따를 것 같아요.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은 심해(深海)는 우리가 꿈꾸는 희망일 테죠. 이제 자신만의 날 선 지느러미를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터닝 할 수 있는 지느러미를 하나쯤 갖고 싶어지네요.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