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수 순회취재팀장

요즘 ‘색출’이란 말이 부쩍 눈에 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과정에서도 그렇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야당에 수사정보를 흘리고 내통하는 검사를 색출해 사법 처리하라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공식적으로 요구하는가 하면, 색출하지 못한다면 윤석열 검찰총장도 직위 유지가 힘들 것이라는 민주당 내부의 강경발언도 나온다. ‘조국 퇴진’과 ‘검찰 개혁’이라는 두 갈래 줄기에서 국민도 극심하게 양분되고 있다. 샅샅이 뒤져서 찾아낸다는 뜻을 담은 ‘색출’이란 말이 더 무섭게 다가온다.

‘색출’이란 단어가 그리 낯설지는 않은 편이다. 출입처가 아파할 소재를 제보받아 비판기사로 활자화했을 때 언론사에 제보한 취재원이 누구인지 ‘색출’하려는 움직임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 다리 절단 사고가 난 이월드에서도 언론사에 내부 이야기를 전한 이가 누구인지 찾아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후문도 들린다. 그렇다고 무섭지는 않았다.

조금 색다른 느낌의 ‘색출’이란 말을 접했다. 마음이 아주 불편했다.

370여 명의 파견·용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놓고 노사가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경북대병원에서 ‘색출’이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경북일보 9월 6일 자 7면에 담긴 기사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내부 구성원의 불만을 담은 기사가 화근이 됐다.

정규직 직원 A씨는 환경미화와 주차 등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안을 논의하면서도 정작 3580명이 넘는 기존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등 최소한의 여론 수렴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고, B씨는 정부지원금 등 재정 상황이 완전 다른 서울대병원이 지방 국립대병원의 기준점이 돼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냈다. C씨는 기존 정규직 직원들이 주차나 원무과 수납 등 다른 분야로 배치될 가능성에 대한 염려와 더불어 고령자가 많은 환경미화 분야 비정규직의 정년을 65세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 D씨 또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 순환배치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려했다.

기사에는 노조 관계자의 의견도 있다. 정규직 직원의 상대적 박탈감, 환경미화 비정규직의 정년문제 등 다양하게 나오는 불만들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9월 11일 열린 제17차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경북대병원 노조 측은 “경북일보 기사에 나오는 A, B, C, D가 누구인지 색출하라”고 정호영 경북대병원장에게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노조 관계자는 “내부 구성원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아주 생생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며 “노조의 이야기보다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불만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는 것을 보면 노골적으로 언론사에 제보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기자에게 불만을 제기한 경북대병원 내부 직원이 누구인지 직접 가르쳐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C씨가 누구인지 안다”는 노조 관계자의 말을 듣고 마음이 정말 불편했다. ‘색출’의 단서를 제공하게 됐지만, 좀 억울하기도 했다.

경북대병원 노조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9월 3일 서울대병원의 파견·용역 노동자 직접고용 선언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던 지방 국립대병원의 비정규직 직접 고용이 쉽사리 진행되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고, 오죽하면 30일 다시 무기한 파업에 나서는 상황에서 더 그렇다.

무조건 노조 편만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병원의 살림을 책임져주는 교수들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는 있었지만, 이번 논의의 또 다른 이해당사자이면서도 그런 절차에서 소외된 정규직 직원들의 이야기도 기사에 녹여내야 하는 책무를 수행해야 했다.

정당한 검찰권 행사라는 전제를 달면 야당과 내통하는 검사를 색출해 처벌하라는 요구를 받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색출’이란 단어를 더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준수 순회취재팀장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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