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시간 딛고 빌딩 숲 살아 숨 쉬는 자연이 된 생태 쉼터

여름철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물놀이터’의 모습

글 싣는 순서

1. 주민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폐철도’…뉴욕 하이라인

2. 자연과 인간예술이 숨 쉬는 도시재생…스톰 킹 아트센터

3. 환경재생 생태공원 된 ‘폐 정수장’…선유도 공원

4. 포항, 도시 체험형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 사이를 잇는 양화대교를 지나다 보면 푸른 나무가 우거진 작은 섬이 한강 위에 떠 있다.

이 섬은 해가 떠 있을 때는 ‘인생 사진’을 남기고 싶은 연인·가족들이, 해질 무렵이면 서울의 야경을 담기 위한 사진 전문가들로 북적인다.

고층빌딩에 설치된 LED 광고판이 뿜어내는 휘황찬란한 빛, 아직 퇴근하지 못한 직장인들로 가득한 사무실 조명으로 가득한 여의도를 아우르는 한강까지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이 섬은 바로 ‘선유도 공원’이다.

선유도는 조선 시대까지 선유봉(仙遊峰)이라는 작은 산이 있었던 곳이다. 이름처럼 ‘신선이 놀던 산’이라는 뜻으로 한강 절경 중 하나로 손꼽혔다.

당시 선유봉의 절경은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 ‘경교명승첩’이라는 작품 중 하나로 서울 간송박물관에 현재까지 남아 있다.

하지만 예전 선유봉이 갖고 있던 산봉우리는 지금의 선유도에선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일까.

일제강점 시절인 1925년, 대홍수가 발생하자 일제는 한강의 범람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선유도 봉우리를 잘라 그 암석과 흙으로 둑을 쌓고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선유봉의 수난이 시작됐다.

급속여과시설인 ‘수질정화원’에는 아직도 한강물이 흐르고 있다.

일제는 여의도 비행장으로 가는 도로를 놓기 위한 암석을 캐기 위해 선유봉을 계속해서 괴롭혔다.

1968년 한강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선유봉은 봉우리가 아닌 섬이 됐다.

선유봉 주변에 7m 높이의 시멘트 옹벽이 세워졌고, 한강제방도로(현 강북강변도로) 건설 작업을 위해 선유봉 앞 모래를 퍼 사용했다.

그렇게 폐허가 된 선유도는 결국 1978년 시민이 마실 물을 공급하기 위한 정수장으로 개발됐다.

펌프실과 여과지, 침전지 등 정수장 구조물이 들어선 선유도의 모습은 더 이상 ‘신선이 놀던 산’이 아니었다.

이후 ‘선유도 정수장’은 2000년 12월 수질악화 등의 이유로 폐쇄된 뒤, 2002년 4월 산업화의 증거물인 정수장 건축 시설물을 활용한 공원으로 탈바꿈 했다.

한강 하류의 몇 안 되는 섬,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한강의 조망, 정수장이라는 독특한 기능 등은 선유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정수장 기능의 핵심공간인 지하수조 부분에 주목하고 그 공간을 드러내, 공원의 활동을 담고 주제를 전달하는 공간으로 재활용했다.

섬 외부에서 볼 때 지나치게 돌출돼 섬의 미관을 해치는 몇몇 건물들은 철거하되 그 자리를 수목으로 대치해 장소의 흔적을 살렸다.

여러 수생식물이 자라는 ‘수생식물원’, 예전에는 수돗물을 여과하는 여과지였다.

공원 주요시설로는 수질정화원, 선유도이야기관, 녹색기둥의 정원, 수생식물원, 시간의 정원 등이 있다.

이들 중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은 시간의 정원이다.

정수장 구조물을 가장 온전하게 남겼으며, 그 속에 자라는 식물들로 인해 시간의 흔적을 체감하기 쉬운 장소로 평가된다.

콘크리트 수로로 물이 흐르고 있어 수로 아래·위는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시간의 정원 한켠에 조성된 대나무숲도 사진 포인트 중 하나다.

선유전망대 또한 사진가에게는 필수 코스다. 전망대에 서면 정면에 북한산과 남산이 보이고, 왼편에는 국회의사당과 행주산성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한강과 서울경관 조망 포인트로는 이곳 전망대뿐 아니라 정수장 시절 취수탑을 개조한 카페테리아, 팔각지붕의 선유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에서 취수한 물에 약품을 넣어 응집시킨 오염물질들이 가라앉는 옛 정수장의 제2 침전지인 수질 정화원에서는 부들·부레옥잠·줄·연꽃 등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지하 시설인 제1침전지를 꾸며 만든 ‘시간의 정원’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곳을 거친 물은 공원 전체로 공급돼 물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놀 수 있고, 수생식물원에서는 온갖 종류의 수생식물들이 키워진다.

침전지의 상부 수로는 모든 수생식물 정원으로 물을 실어 나르는 물길로 사용되고 있다.

정수 과정에서 나온 찌꺼기를 처리하던 농축조와 조정조는 지붕이 없는 거대한 원형 구조물이었다.

환경놀이마당(놀이터), 원형극장, 환경교실 그리고 화장실이 이를 재활용해 만든 4개의 원형 공간이다.

지하 정수지의 지붕을 걷어 내고 기둥만 남겨 조성한 ‘녹색기둥의 정원’에 덩쿨식물이 자라 있다.

또, 생산된 수돗물을 저장하던 지하 정수지 위의 콘크리트 상판을 걷어 내고 기둥만을 남겨 조성한 녹색기둥의정원에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콘크리트 기둥이 마치 고대시대에 신을 모시던 조각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운치 있다.

공원 곳곳에 쉼터와 잔디밭이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인기가 높다. 낮 시간도 좋지만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저녁 나들이 코스로도 인기다.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 이용도 금지 시켜 특히 어린이 안전에 신경 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갖은 수난을 당했던 선유봉은 비로소 채석장, 정수장을 거쳐 공원으로써 4번째 삶을 맞이 했다.

옛 정수장 구조물을 완전히 철거하지 않은 채 고치고 다듬은 다음 물풀과 들꽃을 가꿔 만든 이 공원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시설인 만큼 건물의 벽과 기둥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낡아가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침전지 콘크리트 사이에는 원추리와 물푸레나무 등 각종 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가장 인공적인 시설에서 자연의 새살이 돋아 나는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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