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우리 사회에 ‘공정’이란 커다란 화두 하나가 던져졌다. 아니, 어쩌면 아직은 화두로까지 인식되고 있진 않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현 법무장관 임명을 계기로 분열된 국민 여론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이 좀 더 성숙된 사회로 나가기 위한 성장통이라면 얼마든지, 그리고 마땅히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갈등 양상을 보면 장관임명 자체에 대한 찬성과 반대, 즉 찬반논쟁만 난무할 뿐,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빠져있다. 사실, 우리나라 고위층 가족의 비도덕적 행태가 드러난 사례는 그야말로 차고도 넘친다. 고위직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매번 국민들이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럼에도 이번만큼 유독 사회 전체가 들썩이는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내세운 가장 큰 무기 중 하나가 도덕 차원의 상대적 우월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의 가정 역시, 부패 기득권층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계층구조에서 상류층의 반사회적 ‘특권 누리기’는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현상이 되었으며,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그 문화를 서로 향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침내 온 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결코 공정한 사회가 아니란 것이 확인된 것이다.

한 국회의원실이 한국장학재단이 집계한 ‘2012~2019년 국가 장학금 신청 현황’ 자료를 분석해 언론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대 재학생 중 40.7%가 가구소득 9·10분위에 해당하는 고소득층 자녀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소득 9·10분위에 속한다는 것은 가구 월 소득 인정액이 1,384만원 또는 그 이상을 의미한다. SKY를 포함한 서울 주요대학의 경우 역시, 전체 재학생의 36.2%가 고소득층 자녀들로 조사됐다. 또한 국내 의대 재학생의 경우엔 전체 재학생의 48%가 고소득층 자녀들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의 자녀 수 와 비교해 1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립대 재학생의 경우, 저소득층 자녀 비율은 40.7%로 25.2%인 고소득층 자녀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마디로 소득 격차에 따른 학업 기회 불평등이 매우 심각하다는 얘기다. ‘학벌사회’인 우리나라에서 학업 기회 불평등은 사회 진출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계급 대물림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과연 이러한 사회를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2018년 작성한 ‘편견 없는 채용, 블라인드 채용 실태조사 및 성과분석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부문 채용에서 학벌, 학력, 출신지 그리고 신체조건 등 차별적 요인을 이력서에 기재하지 않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 결과, SKY대 출신자 비율이 전에 비해 3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앞서 현 정부는 지난 2017년 하반기부터 공공기관 인재모집에 있어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한 바 있다. 한 교육시민단체가 같은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바에 의하면 블라인드 채용으로 입사한 신입사원 중 수도권 명문대 출신자 비율은 이전에 비해 4.8% 포인트가 감소하고 대신, 비수도권 대학 출신자 비율이 4.7%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역인재 채용비율이 18.5%에서 21.99%로 높아졌는가 하면,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39.6%에서 43.1%로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새로이 입사한 직원들의 직무역량과 조직적응도를 측정한 결과, ‘효율성’면에서 약간의 개선도 이루어졌던 걸로 나타났다. 공정한 기회균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매우 유의미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존 롤즈는 자신의 저서 「정의론」에서 “사유체계에서 제1 덕목은 진리이고, 사회제도에서 제1 덕목은 ‘정의’이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정의는 바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다. 자유, 기회, 소득 등과 같은 인간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가치들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공정으로서의 정의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공정’하고는 거리가 먼 만큼, 더 이상 소모적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특권 누리기’가 원천 배제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수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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