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사잇길 걸으며 나만의 시간을…

금당실 송림은 세월의 여파에 견딘 상처가 아문 것처럼 소나무의 껍질은 두껍지만 멋스럽다.
짙은 솔 향에 기분이 좋아지고 웅장하고 울창한 소나무들이 겸손한 곡선미를 뽐내며 강강술래를 하듯 서로 얽혀 이어져 장관을 이루는 소나무 숲이 있다. 이곳은 경북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이다. 숲으로 들어서면 이방인을 반기듯 미로 같은 소나무가 사잇길을 내준다. 이성계가 새 도읍지를 정하려고 거명된 곳, 정감록에 기록된 살기 좋은 10곳 중한 곳이 바로 송림을 품은 금당실마을이다.

금당실의 송림은 낙동강 지류인 복천·용문사 계곡·청룡사 계곡으로 흐르는 계류가 만나면서 여름철이 되면 하천물이 범람하고 겨울에는 북서 한풍이 심하게 불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고 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소나무를 많이 심어서 생긴 보호림 숲이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금당 실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
9일 오전 송림의 굴곡진 소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지고 하늘을 가린 솔잎의 향에 취하고 사색으로 시간이 멈춘 나만의 공간이 된다. 세월의 여파에 견딘 상처가 아문 것처럼 소나무의 껍질은 두껍지만 멋스럽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도 추운 줄 모르고 소나무 사잇길을 재촉해 걸어본다.

아직 이슬이 머문 풀이 살짝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만, 솔 향에 기분이 좋아진다. 일상 탈출과 자연치유공간으로는 손색이 없다. 오미봉에서 걸어 용문초등학교 교정 안까지 이어진 송림의 길을 걸으며 제 각 각인 소나무의 모양을 다른 형체와 연상시켜보며 선조들이 소나무를 아끼고 보호해 지금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었다. 송림은 지금의 금당실 오미봉 아래에서부터 용문초등학교 교정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2.5km 초간정과 병암정 1.5km까지 소나무가 이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송림은 아픈 과거도 있다. 1890년대 말 조선 왕실로부터 오미봉 자락 금광 채굴권을 획득한 러시아가 공사를 시작하자 이에 항의하는 마을 주민과 충돌이 일어나 러시아인 두 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법적 처벌을 면치 못할 상황이었으나 당시 법무 대신 이유 인이 마을의 소나무를 목재로 내어 주는 조건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공사는 중지되고 결과적으로 오미 봉도 지킬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9일 오전 송림의 굴곡진 소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지고 하늘을 가린 솔잎의 향에 취하고 사색으로 시간이 멈춘 나만의 공간이 된다
또 1863년 동학을 전파하던 최제우가 체포되어 처형되는 과정에서 민심이 동요되어 큰 나무들이 일부 벌채되고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노비구출 비용 마련을 위한 나무 벌채가 심해 1895년(고종 32년) 법무 대신이던 이유인이 금당실에 95칸의 집을 짓고 거주하면서 이 숲을 보호해 왔다는 얘기도 있다. 금당실에 사는 한 주민은 “아버지가 100세까지 사셨는데 아버지가 어릴 적 양주 대감 이유 인이 나무 밑에만 와도 벌을 주었다고 했다”며“상당히 송림을 아끼신 것 같다”전했다.

당시 송림은 마을에서 1.5km 떨어진 병암정까지 연결돼 있었다니 지금의 3배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던 이유인은 이 인연으로 금당 실에 99칸짜리 저택을 지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다행히 900여 그루의 소나무는 이 고장을 지키고 있다.

이들 소나무는 수령 100~200년·높이 13~18m·가슴높이의 줄기 둘레 20~80㎝ 정도로 대부분 줄기가 곧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자란 자연림이다. 오늘날에는 수해방지와 방풍림 역할뿐만 아니라 마을의 휴식처와 행사의 중심지로 활용되는 등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큰 마을 숲이다.

해가 뜰 때와 질 때의 송림의 풍광은 장관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의 광경과 해가지는 일몰을 남기기 위해 많은 사진 작가들이 찾는 곳이다. 용문면은 유명한 관광지다. 송림과 이어지는 고택이 즐비하고 7.5km 달하는 돌담길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용문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는 송림과 돌담길이 더해지면서 고졸함이 더해진다.

우측으로 돌아들어 가면 바로 소담스런 골목이 이어진다. 돌담길이다. 강돌로 흙을 빚어 쌓아 올린 가슴팍 높이의 돌담길이 미로처럼 가지를 뻗는다. 흙을 섞어 깔끔하게 마무리한 담장이 있는가 하면, 돌을 생김새대로 올려놓은 담장도 많다. 어디를 걸어도 고향 집 어귀에 들어선 듯 정감이 넘친다. 담쟁이와 능소화 넝쿨이 돌과 담을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뒤덮어 마을 전체가 정원이고 식물원이다. 구석구석까지 마을을 가꾸고 다듬는 데 정성을 들인 주민들의 손길이 서려 있다. 마을 규모는 남북으로 1km 남짓이지만 골목길을 모두 합치면 약 7.5km에 이를 정도로 복잡한 구조다. 금당 실 송림은 오랜 기간 마을 주민들이 마을 보호를 위해 이 숲을 보호하고 관리해 왔다.

송림을 안은 금당실 마을은 함양박씨 3인을 배향한 금곡서원(金谷書院),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朴從鱗)을 모신 추원재(追遠齋) 및 사당, 반송재 고택, 사괴당 고택,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주택 터 등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상만 기자
이상만 기자 smlee@kyongbuk.com

경북도청, 경북경찰청, 안동, 예천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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