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대에서 온 법무장관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물었다. “대법원에 ‘헌법’이 한 분 계시지 않소.” 헌법을 내세우며 원칙을 고수하고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김병로 대법원장을 빗댄 물음이었다.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에서 외풍 차단을 위해선 사법부가 대통령의 압박으로부터 얼마나 당당한 자세로 독립을 지켜내는가가 일차적 관건이다. 그 때문에 대법원장의 처신이 의연하고 당당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의 사법부는 세계에 없는 권한을 행사한다는 불만과 함께 가인이 고집이 세다”며 김병로 대법원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법부에 간섭하지 못한 것은 온몸으로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김병로 대법원장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할 때 대통령을 대하는 자세가 3권의 1부인 사법부의 장으로서 과함이나 부족함이 없는 늠름한 자세를 견지했다. 오만도 비굴함도 없는 의연하고 당당한 대법원장의 자세는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든든한 기둥이 됐다.

이 대통령은 가인을 “대법원장님”이라 부르며 사법부 수장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했다. 가인도 대통령에게 보내는 문서는 친필로 섰으며 끝 마디는 “복망하나이다”로 맺어 극진한 예우를 보였다. 이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의 나이가 12년 차이가 나는데도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예우를 갖춘 데는 두 사람 모두 건국 공로자로서의 긍지가 한몫했다. 김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평소 행정적, 정치적 행위에 대한 언급은 삼갔다. 그러나 헌법의 근본을 유린하거나 법치를 능멸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면 엄중한 비판을 꺼리지 않았다. 대법원장이라는 직분을 넘어서 법에 관한 최고지도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대통령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가인의 삶 전체가 주는 카리스마적 후광이 뒷받침 되었다.

미국 27대 대통령 태프트는 미국연방대법원 역사에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동시에 경험한 유일한 인물이다. 대통령을 역임한 후 대법원장을 지낸 태프트는 대법원장의 위상이 어떤 것인가를 밝혔다. “나는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조국 동생의 구속영장 기각은 사법부만 아니라 대법원장 위상에도 먹칠한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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