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호 전 영천교육장

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그에 앞서 9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 고령자 통계’에 의하면 올해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5170만9000명으로 2028년까지 계속 증가 후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올해 65세 이상 인구는 768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 중 14.9%를 차지하고 2050년(1900만7000명)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할 구성비가 2060년엔 43.9%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노인 나이 기준이 65세, 1910년대 즉 100년 전 기준이라서 평균수명이 엄청나게 연장된 지금은 수정돼야 한다는 논란이 있으나 WHO(세계보건기구)에서도 아직은 공인하는 기준이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있지만 나는 억지를 부려 ‘어른’이란 “사회 구성원이 규범이나 상식을 벗어나는 언행을 할 때 ‘그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즉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그 사회의 어른이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머지 않은 옛날엔 ‘노인=어른’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고, 대가족의 정점엔 항상 ‘노인=어른’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앞의 통계치에서 보듯 노인은 늘어나고 있지만 어른이 보이지 않는 사회로 돼가고 있다.

물론 사회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 탓도 간과할 수 없지만 어른이 실종된 사회로 전락하고 있지 않은가.

도의 실종·빈번한 학교폭력·높은 자살률 기타 사회적 병폐들은 물론 두 달 넘게 나라가 헛돌고 있는 작금의 사태도 결국은 어른 부재, 어른 실종이 빚은 분란이라고 본다.

나 역시 65세 이상에 속하는 ‘어른’이 못되고 있는 ‘노인’이다.

좋은 포도주와 위스키는 오랜 세월 정성 들여 천천히 숙성시켜야 그 맛의 깊이와 풍미뿐만 아니라 향기와 부드러운 묘미를 얻을 수 있다.

바이올린도 연주라는 숙성 과정을 거쳐 세월이 흐를수록 그 음색과 울림이 맑고 아름답게 울려 퍼진다.

우리 사람도 70, 80년 노화라는 숙성기간을 거치면서 땀 흘려 일해 이루었는데 어찌하여 향기롭지 못하고, 어째서 존경받지 못하며 주름 잡힌 늙은이가 되어 소외되고 잊혀져 가야 하는가?

백발과 주름진 그 얼굴은 결코 추함이나 나약함을 뜻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랑스런 인생 훈장이 아닌가. 꾸준한 자기 활동을 통해 밝고 맑은 건강을 유지하면서 독서·취미·봉사를 통해 정신 건강에도 정진하자.

나 스스로 건강하고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이 되면 살면서 쌓은 경험과 지혜를 중시한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아프라카의 속담처럼 사회의 큰 어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잊혀 지지 않고 항상 그리워지면서 ‘다시 보고 싶은 어른’으로 익어갈 수 있으리라.

이 시대의 모든 노인들이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어른’의 자리로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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