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지난 두 달간 한국 사회를 국론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조국사태가 일단락되었지만 검찰개혁의 화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검찰이 개혁의 대상이 된 데에는 검찰 스스로 무덤을 파온 결과 일 수도 있다. 그동안 국민은 검찰과 정치권력의 뿌리 깊은 유착과 검찰 내부 비리를 숱하게 봐 오면서 그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그래서 국정과제의 최우선 과제로 검찰개혁을 내건 문재인 정부에 대해 국민들은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수사권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라는 개혁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곁가지만 흔들고 있는 정부 개혁안을 보면서 과연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을 제대로 하겠느냐는 회의감과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최고의 법집행기관이라기보다는 표적수사, 별건수사, 하명수사, 부실수사, 봐주기 수사 등 권력과 지나치게 결탁하는 행태를 보여줌으로써 수사권 독립은커녕 검찰 스스로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비난을 자초해왔다. 하지만 반듯이 검찰만 탓할 수 있을까? 검찰청법 제34조에 의해 검사의 임명 및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사하고 제8조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즉 검찰이 자신들에 대해 인사권을 행사하는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양복을 흔들며 “옷(검찰) 말고 흔드는 손(정치권력)을 보라”는 전임 검찰총장의 항변이 일견 이해도 된다.

검찰개혁은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 과제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거론되는 것은 검찰개혁이 여태껏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동안 검찰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는 방향의 개혁이라기보다는 정권의 길들이기 차원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준사법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모든 정권이 행정부처로 취급하며 법무부를 통해 인사권을 행사하거나 검찰 수사에 개입해왔다. 그래서 검찰의 수사권독립 없는 검찰 개혁은 진정성이 있을 수가 없다. 정의와 공정을 핵심가치로 “검찰을 정권의 칼로 쓰지 않겠다”던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검찰에게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언급하며 전(前)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관여를 시도했다. 이러면 또 무늬만 검찰개혁 개혁이지 검찰개혁은 공염불로 끝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이 검찰개혁의 만병통치약인양 선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수처가 과연 사법제도의 틀 안에서 6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검찰보다 더 부패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 더욱이 공수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수사 독립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특히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명수사로부터 얼마나 자유스러울까? 검경수사권 조정문제도 수사권은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적인 침해를 가져오는 국가 공권력인 만큼 검찰의 힘을 빼기 위한 수단이 아닌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한 논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 없이 수사권이 경찰에게 이관된다면 검찰의 문제점이 경찰로 전이되는 것 이외에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국민들은 검찰개혁에 앞서 검찰 스스로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한 정의의 수호자로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적 울타리로서 검찰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검찰개혁은 검찰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해 주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검찰 권한의 제한에 집중한 나머지 검찰 기능을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검찰은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씻고 살아 있는 권력과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는 검찰의 결기를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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