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박사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박사

세상에는 꼭 필요한 사람과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리고 필요 없는 사람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살아오면서 종종 듣던 말이었지만 나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한다. 누구든 자신의 입장에서 보는 스스로를 필요 없는 사람으로 치부할까만 그 기준과 선택은 내가 아닌 상대에게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TV종편의 각종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사회적 이슈를 심도 있게 다루는 비중 있는 채널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지상파에서 다루기 힘든 주제들을 과감하게 다루어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정치적 문제를 비롯하여 경제 사회문제까지 시청자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평론가들의 시원한 입담은 보는 이의 대리만족을 겸하여 통쾌하기까지 하다.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프로그램의 수준을 떨어드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토론하는 전문가들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은, 판단이 어려운 시청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어느 방송이나 할 것 없이 프로그램의 정치평론가 수준도 꼭 필요한 사람과, 있으나마나한 사람, 그리고 필요 없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안 이슈에 대해 쉬운 설명으로 시청자를 감동시키는 출연자가 있는가 하면, 주제와 다른 동문서답으로 의제를 벗어나는 출연자. 그리고 방송 내내 몇 마디 못하고 앉아있는 묵묵부답형이 있다. 정치평론가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입장은 마냥 다르겠지만, 수준 높은 언변과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출연자는 시청자들의 지식정보제공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며, 어떤 이는 훗날 정치인으로 성장하여 현실정치의 치명적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는 진면목을 보여 우리 정치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조국사태로 인해 정치혐오를 가지고 내년 총선에 불출마한다는 정치평론가 출신 이철희 국회의원과 표창원 의원이 화제이다. 도저히 정치를 바꿀 자신이 없고, 정치를 책임지겠다는 명분이지만 개운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감사와 의정활동을 지켜보면서 여의도의 많은 정치인 중 희망을 걸었던 기대주였기에 그 섭섭함과 실망감을 토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하지만, 민의를 대변하는 초심으로 정치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투철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출발한 신념은 결국 겉과 속이 다른 가식된 국회의원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심은 물거품이 되고 민의가 아닌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애쓰는 정치인이 다수인 지금, 오죽하면 삼류정치라고 할까. 염치없고 뻔뻔스러움의 극치는 뉴스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꼭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양심 가책에 못 이겨 불출마를 선언하고, 없어도 되는 정치인은 기를 쓰고 정치를 하려고 온갖 해괴하고 망측한 짓을 다 하는 현실의 정치판에서, 갈수록 진솔하고 참된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받기 위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앞서는 정치인을 보며, 불현듯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떠오른다. 적어도 전직 대통령의 보은을 입고 승승장구하던 대통령 팔이에서 성공한 정치인의 양심이라면 그 책임이 가볍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말의 가책도 없이, 탄핵사태의 책임공방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는 그들만의 정쟁을 볼 때,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가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은 정치인의 책임과 양심을 믿고 투표한다. 애초부터 탄핵사태의 책임에서 의원사퇴 표명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책임을 통감했다면 총선 불출마 선언이라는 소식이라도 먼저 들었어야 했다. 가장 믿을 수 없는 직업이 정치인이라는 여론조사는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상대에 대한 막말과 선동만 있고, 숙의와 타협은 사라졌다.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이철희 의원과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 책임을 지겠다”는 표창원 의원의 불출마 명분은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책임을 통감하는 순수한 양심으로 기록될 것이다. 비우면 채워지는 것이 인생이듯이 정치 또한 마찬가지이다. 굴절 많은 정치사에서 멀리뛰기 위한 준비로 한발 멈추는 불출마 선언이 더 큰 성장을 위한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의 용기에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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