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황제 무종은 놀이를 좋아했다. 용기를 과시하는 놀이라면 목숨도 돌보지 않을 정도였다. 무종은 궁전 안에 호랑이 몇 마리를 각각 다른 우리에 넣어 길렀다. 무종은 갑자기 호랑이 우리 안에 들어가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영이라는 신하를 데리고 호랑이 우리에 갔다. 잔뜩 겁을 먹은 진영은 황제 뒤를 따르기는 했으나 아무 말도 못했다. 우리 안으로 들어간 무종이 잡으려는 호랑이가 무종 쪽으로 다가왔다. 이만저만한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겁에 질린 진영은 속수무책이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무관 출신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간신으로 알려져 있던 강빈이 달려와 황제에게 달려들려던 호랑이를 막아섰다. 주춤하던 호랑이가 물러나자 무종은 무사히 우리를 빠져나왔다. 간신도 용맹한 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역사적으로 ‘臣’과 ‘大’자를 붙인 간신들은 대개 얕잡아볼 수 없는 무리들이었다. 진나라 말기 조고는 법률에 정통했고 당나라 때 이의부는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 입만 열었다 하면 시가 줄줄이 나왔다. 송나라 때 채경은 글과 그림에 정통해 그 이름이 한림(翰林)에 올랐다. 그 죄상이 만 가지 죄상으로도 다 감쌀 수 없는 대간(大奸) 송나라 때의 진회도 문장이 뛰어났다. 명나라 때 엄숭은 문단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고 주연우는 20대 초반 잇달아 장원급제 장안에 명성을 떨쳤다. 그래서 ‘간신엔 머저리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간신을 얕잡아 보다가 큰코다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역사상 출중한 사상가, 정치가, 영웅호걸들도 간신들을 깔봐 변을 당했다.

간신의 특징은 일이 닥치면 먼저 자신을 위해 주판알을 굴린다. 모든 것이 사적인 이해득실에 좌우된다. 그들의 눈에는 백성은 헌신짝에 불과하다. 오직 자신과 패거리의 부귀영화만 생각하고 나라의 안위와 평안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젖 주는 사람이 곧 나의 어머니다’가 간신들이 철석같이 믿는 처세철학이다.

조국을 감싸고 도는 ‘참여연대’에 대해 ‘간신연대’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다. 머저리는 없어도 권력에 눈먼 머저리는 많다. 조국도 참여연대 출신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