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가을이 깊어지면서 들판은 온통 꽃 잔치다. 봄에 꽃을 피웠던 나무들은 단풍으로 다시 한번 꽃을 피우고 비탈진 곳이나 수풀이 우거진 사이 몇 계절을 건너온 꽃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져 있다. 가을꽃은 그 빛깔이 환해서 몇 송이만 있어도 방 한가득 빛이 드는 느낌처럼 환해지기도 한다. 나는 이 계절에 들판에서 볼 수 있는 꽃을 통틀어 들국화라고 불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야생화를 연구하는 한 분이 그들이 가진 각각의 이름을 자세히 구분해주셨다. 꽃의 크기로 빛깔로 그들의 이름은 각각 구분되어 있었다.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 감국 등이 그들의 이름이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고 들길을 걸었던 자신을 탓하는 한 시인처럼 나도 어리석게 그 꽃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 생각도, 불러 줄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은 노랑에서부터 큰 노랑, 옅은 보라에서, 진보라…가지각색 이 아름다운 빛깔의 꽃들은 가을 들판이 화려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나는 이 중에서 노란색 국화를 특히 좋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감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었다. 그것은 크기가 손톱처럼 작은데 향기는 그 어떤 꽃보다도 진해서 몇 송이만으로도 제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낼 수 있는 꽃이었다.

학창 시절, 나는 특별히 좋아하던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이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긴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햇살을 등지고 복도 저쪽에서 걸어오시면 나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듯한 황홀감에 빠지곤 했다. 내 마음에서 선생님은 천사나 다름없었다. 내가 가톨릭 학생회에 들어가 영세를 받은 것도 그 선생님의 영향이었으며, 음악 감상반에 들어가 생전 처음 라흐마니노프를 듣고 지금껏 클래식으로 취향이 굳은 것도 그 선생님의 영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 어떻게든 내 관심을 표현하고 싶어서 궁리 끝에 꽃을 꺾어서 꽂아드리기로 했다. 지금처럼 조금 늦은 가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들판으로 나갔다. 며칠 전에 보았던 유난히 샛노랗고 향기가 진한 꽃을 꺾기 위해서였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때였지만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한적한 산 아래까지 걸어가 그 꽃을 한아름 꺾었다. 그리고는 제일 이른 시간에 학교로 가서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교무실의 책상에 꽃을 꽂아드렸다. 온 교무실이 꽃향기로 가득해졌고 누가 꽂아놓은 꽃이냐는 추적 끝에 나의 소행임을 선생님은 알게 되었다. 생물과목 담당이셨던 그 선생님은 무척 좋아하셨지만 담임 선생님께서는 섭섭해하셨던 기억이 있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담임 선생님께서는 그 들국화 이야기를 간혹 하신다. 그러면서 천사라고 불렀던 선생님의 안부를 알려주신다. “너 그때 그 선생한테 미쳐 있었잖아….” 하시는 말씀도 빠뜨리지 않으신다.

다시 그즈음이다. 길가에 지천으로 핀 노란 감국을 보면 가까이 다가가 그 향기를 맡고 싶어진다. 그리고 몇 송이 꺾어 누군가의 책상에 꽂아주고 싶어진다. 선물을 해도 안 되고 받아도 안 되는 시대, 예전처럼 저 감국 한 다발을 꺾어 선생님께 선물한다면 어떤 벌을 받게 될까.

가을 들판은 아름답고 추억도 매년 피었다 지곤 한다. 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 이런 아련한 아름다움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들판에 나가 들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추억을 쌓고 온다면 가산점을 주겠노라 말하고 강의실에서 나오는 길이 조금 쓸쓸했던 이유를 새로 나온 전화기 열풍에 들떠있던 학생들은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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