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포항지진이 발생한 지 오늘로 딱 2년째이다. 지진관측을 시작한 이래 역대 두 번째 규모로 공식 기록되긴 했지만 그 피해규모는 사상 최악이었던 만큼 아직도 그날의 공포가 생생하기만 하다. 잦은 여진으로 매일매일 불안에 떨어야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지진 발생 원인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열발전소가 유발한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 말고는 뭐하나 제대로 된 조치가 이루어진 게 없다. 피해주민 지원을 위한 지진특별법은 늘 그렇듯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지진을 유발시킨 책임의 소재를 밝힐 검찰 조사는 최근 들어서야 겨우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졸지에 집터를 깡그리 잃어버리고 아직도 한데 잠을 청해야 하는 주민들이 남아 있음에도 피해지역에 대한 재건은 계획만 요란할 뿐 마냥 더디기만 하다.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정말이지 답답할 지경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피해주민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관련기관의 책임규명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린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 즉 도시재건이 가장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주민들의 지속가능한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 삶의 질을 책임지는 지자체라면 도시재건에 보다 선도적으로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 나아가 재건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 주민 의견 수렴과정을 반드시 거쳐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도시건설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대도시, 크라이스트처치는 지난 2011년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거의 도시의 반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이후 도시재건 사업이 현재까지도 계속될 만큼 당시 피해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크라이스트처치 시 당국은 폐허로 변해버린 지역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Central City Plan(도심계획)’이라는 도시재건 계획구상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시는 ‘Share an Idea(아이디어 나누기)’라는 캠페인을 전방위적으로 벌였다. 도시재건 방향설정을 위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벌인 캠페인은 ‘Move(교통, 이동수단), Market(시장, 기업, 투자), Space(도시공간 및 건축) 그리고 Life(교육, 문화)’ 등 4개 분야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렇게 해서 모인 아이디어 가운데 10만여 개의 주민 의견이 실제로 계획에 반영되는 성과를 올렸다. 이익 극대화를 주장하며 10층 이상의 고층건물을 고집하던 개발참여 민간업체와 미관상 화려함보다는 쾌적한 도시환경을 원하는 시민들이 서로 합의해 새 건축물의 높이를 7층 이하로 제한하기로 한 것도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남의 나라 일이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우리 시의 입장에서 반드시 곱씹어 볼 대목이 아닌가 싶다.

지진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흥해지역이 ‘특별도시재생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포항시가 내놓은 사업계획에 주민 의견이 과연 얼마만큼 반영되었는지 의문이다.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한 그 어떤 행정절차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근 해당지역 시의원이 시정질문을 통해 주민 의견 수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는 언론보도가 있는 걸로 봐서는 사전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주민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행정의 결과는 대개 예산 낭비로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최근 이용객이 없어 예산 낭비의 사례로 지적되고 있는 ‘포항해상캐릭터 공원’과 ‘워터 폴리’가 여기에 속한다. 또한 충분한 사전소통 없이 무리하게 추진한 정책 사업은 주민들 간 갈등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현재 찬·반 갈등이 심각한 ‘양학공원개발’ 사업과 지역 시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을 야기한 오천지역 ‘생활폐기물에너지화시설(SRF)’ 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다.

지진 발생 이후 우리 지역은 여러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지정받으면서 도시의 면모를 새롭게 탈바꿈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하지만 사업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지자체가 주민들과의 ‘소통 의지’가 없거나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조정 능력’이 부족하다면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지진이란 큰 시련 뒤에 어렵사리 찾아온 도약의 발판을 너무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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