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호 전 영천교육장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최근 대입문제로 난상토론을 벌이다 급기야 한 친구가 ‘똘똘한 초등 1학년 손주에게 받아쓰기를 시켜보니 형편없더라’며 ‘너는 40여 년 교육에 종사하면서 뭘 했느냐’는 질책성 얘길 듣고 나름 반론을 제기했다.

교육제도나 정책을 입안할 때 교육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소신껏 교육할 수 있도록 한 적도 없고, 교육에 관한 요구는 노숙인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5000만 가지 이상의 해법이 나올 만큼 지대한 관심과 이해가 얽혀져 위정자들은 그때그때 유불리에 따라 좌고우면하면서 맘대로 정책을 휘두른 결과가 이 모양이 됐다고 열을 올려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친구는 ‘그래도 교육은 교육자들이 책임져야 되지 않느냐’는 지인의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결국 곤혹스러움은 내 몫이 됐다.

그리고 교육과 생활현장의 가장 큰 문제점 몇 가지를 들어본다.

먼저 받아쓰기다.

받아쓰기는 쓰기·읽기·듣기와 말하기 등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는 활동이지만 교육부는 한글교육을 충실히 하기 위해 초등 1학년 받아쓰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학습출발점을 똑같이 만들어 주는 게 초등 1학년 교실의 목표라며 다양한 교구를 이용해 한글교육 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어놔 외래어인지 한글 인지 조차 헷갈리는 온갖 간판들을 읽으면서 자라나는 한글문맹아(?)들은 도대체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두 번째는 이름을 지어주고도 부르지 않는 어른들의 문제다.

부모와 조부모들은 알토란 같은 자식이 태어나면 온갖 머리를 짜내어 이 세상 하나뿐인 최고의 이름을 지어놓고도 정작 이름보다는 ‘아∼들!’, ‘딸∼’이라고만 부르는 게 요즘 대세다.

이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내 아이 이름을 부모부터 불러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두루 불러 주길 바란다는 건 아닐말이다.

세 번째는 부모들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인 것 같아요’의 어정쩡한 표현이다.

‘∼인 것 같아요’는 사실 판단이 불분명할 때 심각하게 고민한 후 이도 저도 표현하기가 애매한 때에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인 것 같아요’는 아무 곳에나 남발하는 추세다.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음에도, 또는 분명히 표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분법적 명확한 표현으로 인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배려라고도 할 수 있지만 ‘월요일인 것 같아요’‘맛있는 것 같아요’ 등의 표현은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이다.

이는 그동안 토론문화가 대중화되지 못했던 우리 문화 풍토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필자는 교육행정을 하면서 학교장 등 구성원들에게 “학부모의 바람은 안전한 등하교·엄마손으로 만든 것 같은 영양만점 안전급식·기초와 기본이 정착된 학력”이라고 강조했었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자고 했지만 이것 역시 학교와 가정·지역사회 각각에서 자기 몫을 다해야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큰 방송매체들이 앞장서서 언어순화에 앞장서 주길 당부드린다.

유행어 ‘바보야, 문제는 ○○에 있는거야’를 교육에 빗댄다면 “바보야, 교육문제는 기초·기본에서 찾아야 되는거야”로 바꿔 말하고 싶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의 해법은‘本立而道生(본립이도생·기본이 바로서면 나아갈 길은 저절로 생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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