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수 순회취재팀장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직위를 갖게 되면 그에 어울리게 변하게 마련이다. 자리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도 있고, 천생 적임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매끄럽게 일 처리를 해나가는 경우도 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를 놓고 걱정스러운 생각이 드는 곳이 있다. 10월 31일 박인건 새 대표가 취임한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다.

4급 팀장 이하 직원은 재단법인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정규직인데, 대표는 3년, 예술감독을 겸한 공연예술본부장은 2년 임기제 계약직 신분이다. 총무팀과 무대시설팀을 지휘하는 경영지원본부장은 2016년 이후 현재까지 공석이다. 2003년 7월 개관해 대구시의 사업소 개념으로 있다가 2013년 11월 재단법인으로 탈바꿈하면서 행정적 안정화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5급 상당의 대구시 소속 공무원이 경영지원본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공무원 파견이 필요 없어서 총무팀장이 경영지원본부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인 강민구 시의원은 지난 15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경영지원본부장 직무대행 체제를 하루빨리 해소하라”고 주문했다.

최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경영지원본부장을 정년을 보장받는 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공석으로 놔뒀던 경영지원본부장을 임명해 정상적으로 가동하겠다면 이해하겠지만, 그 자리에 ‘정규직’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 힘을 주겠다니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대표이사는 3년 만에 바뀌고, 공연예술본부장도 임기가 2년이다.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홍보팀장은 박인건 새 대표 취임 이후 대구시의회에서 경영지원본부장 정상화를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고, 26일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오페라하우스 4급 팀장을 내년 3월 내부 승진시켜서 정규직 경영지원본부장으로 만드는 인사규정을 제정할 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박인건 대표도 현재 총무팀장을 내부 승진시켜서 정규직 경영지원본부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도 반문했고, 현재 경영지원본부장 직무대행인 총무팀장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느냐고도 했다. 본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언론사도 보도국장이나 편집국장을 그만두면 다시 현장기자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도 보탰다.

내부 승진 대상자로 지목된 주누리 총무팀장은 경영지원본부장을 정규직으로 뽑을 수 있다고 인사규정에 명문화 하려고 한다고 했다. 다만, 경영지원본부장이 정규직이 되더라도 인사권은 대표가 쥐고 있는 데다 이번에 경영지원본부장이나 팀장이라 할지라도 문제를 일으키거나 업무능력이 떨어진다면 보직을 해임해 팀원으로 보내는 규정도 넣으려고 한다고 했다. 박인건 대표와 공통된 생각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를 관리·감독하는 대구시 문화콘텐츠과 김범석 주무관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본부장 2명을 임기제로 뽑겠다는 인사규정을 명문화 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대표와 공연예술본부장과 달리 경영지원본부장만 정규직화 하겠다는 계획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오해의 소지가 많은 데다 별로 장점이 없는 모험을 왜 굳이 나서서 하려는지 상식선에서 도무지 이해가 잘 안 된다고도 했다.

“대구의 한 문화단체 정규직 간부로서 온갖 갈등의 중심이 돼 각종 의혹까지 받아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를 알면서도 무소불위의 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자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역 문화계 관계자의 충고를 제발 새겨들었으면 한다.

배준수 순회취재팀장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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