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대구경북연구원 협력관·대구시 부이사관

만산홍엽, 아름다운 계절이다. 연구원을 나서 수성 3번 버스를 타고 대구미술관 정류소에 내리면, 대덕산의 품 안에 안긴 대구미술관이 드러난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언덕길에는 온갖 종류의 가을꽃과 풀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오후 2시 즈음에 도착해 오후 4시 언저리에 나오니 이만한 소풍이 또 없겠구나 생각했다. 전시도 물론 좋았다.

우선 ‘화가의 고향, 대구’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대구가 낳은 천재 화가 이인성 특별전이 좋다. 이인성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30년대의 작품 다수가 전시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정물화로 역사상 금자탑을 이룬 1932년도 작품 ‘카이유’를 반드시 보아야 한다. 다섯 송이의 칼라 꽃과 두 송이 장미, 두 송이 상사화가 멋진 구도를 이루고 배경에 반짝거리는 영롱한 빛을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붓질로 표현해 낸 그의 작품은 단연 우리나라 근대기 보물이다. 또 대구미술관 소장의 ‘붉은 장미’도 압권이다. 왼쪽으로 치우친 붉은 장미의 쏠림 현상을 배경화면의 비율과 테이블 각도로 조정해서 조화로운 화면을 구축했다. 천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발상이다. 사랑하는 딸 애향을 씻기고 침실에 데려온 순간을 그린 ‘침실의 소녀’역시 뭉클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 바라볼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이다.

제19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인 공성훈 작가의 ‘사건으로서의 풍경’도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대상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사람 심리를 위축시키고 뒤흔드는듯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만 같다. 공성훈 작가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팬들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어두운 시간 으슥한 곳에서 보신탕용 도사견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대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남홍 작가의 개인전. 캔버스 화면에 물감을 두텁게 올리고 불로 태운 한지를 붙여 완성한 작품. 작가는 산, 나비, 해, 나무, 봄을 주제로 대자연이 주는 행복한 환희를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생이 끝나는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장면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누구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화면에 구축한다고 한다. 오색찬란하다. 가장 화려한 색들을 조화롭게 구성하며 화면의 질감도 볼륨이, 파토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전시회이다.

‘탄생 100주년 기념: 곽인식’ 역시 기념비적인 전시회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하고 대구미술관에 내려왔는데 위대한 작가 곽인식의 일대기를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1919년, 대구 출신인 작가는 일본으로 건너가 고독과 싸우며 가장 전위적인 예술형식을 선도한 선구자였다.

필자는 이인성이 어째서 천재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고흐의 정열과 세잔의 터치와 고갱의 색채와 보나르의 구도를 적절히 배합하고 조화시켜 조선만의 향토색 회화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준 분이 바로 이인성이다. 이인성이 제시해준 길을 통해서 우리나라 구상회화의 100년 길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해 예술활동을 장려하고 작가들을 지원하는 대구는 분명 문화예술 도시로 자랑스럽다.

이인성과 곽인식은 모두 대구 사람들이다. 대구가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중심이라는 이야기는 이 두 사람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 대가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대구가 미래 미술의 영원한 중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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