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릴 땐 자기 이름 앞이나 자기를 지칭하는 경우 반드시 ‘신(臣)’자를 붙이도록 했다.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이 내려졌다. 태종 때 안주 목사 홍유룡이 동지를 축하하는 글을 임금에게 올리면서 ‘신’자를 빼먹었다. 의정부에서 그를 처벌하라고 주청했으나 왕은 윤허하지 않았다.

사간원이 나서 다시 처벌을 주청했다. “홍유룡은 글자도 알지 못하고, 무예 능력도 없으면서 다만 아첨하고 뜻을 잘 맞춰 외람되게 직임을 받아 조정의 관원이 됐습니다. 마땅히 공손하고 삼가 전하께서 포용하신 덕에 보답해야 하는데도 이것을 망각하고 신하의 예를 잃었습니다.” 태종은 더 이상 두둔하지 못하고 홍유룡을 파직시켰다.

그 후 다시 복직돼 전라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됐지만 역마를 타고 본가가 있는 고향을 왕래하는 등 절제할 줄 모르는 행동 때문에 파직을 거듭했다. 홍유룡은 개국공신이며 1차 왕자 난에 공을 세워 태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결국 법도에 벗어난 탈선 때문에 낭패를 본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사설(私設) 부통령’이 온 나라 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면서 실세 중의 실세로 비쳐 졌던 한 지방중소기업 회장인 강금원씨가 주인공이었다. “나는 정권 내 제1 야당 총재”, “문재인 민정수석도 이번에 갈릴 것”, “나는 노무현 측근들의 군기반장”, “나는 대통령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는 사람”, “나는 이 정권 탄생의 주주”, “대통령 측근이 사고 칠까 봐 돈을 꿔줬다”, “대통령에게 퇴임 후 걱정 말라 했다” 등 정권의 제2인자라도 감히 입밖에 낼 수 없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국감이 아니고 코미디다”라고 국회의원을 면박 주기도 했다. 무소불위 강 회장의 언행에 대해 정치권에선 “이기붕, 차지철 같은 사설 부통령이 또 나왔다”고 비난했다.

아무리 대통령과 친한 사이라 해도 예의와 법도를 벗어난 언행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 동생과 이낙연 총리 동생을 영입해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기업 회장이 한 육군부대 행사에 초청돼 장병들의 사열까지 받아 빈축을 사고 있다. ‘사설 부통령’을 연상시킨 오만 방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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