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여행자는 도시 지향형과 시골 지향형으로 나누어진다. 오랜 도회는 역사와 문명이 오롯이 담겨 희로애락의 흔적이 물씬하다. 반면 향촌은 자연이 빚은 풍광과 아늑한 일상이 여유롭게 다가온다. 물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장소의 호불호가 다를 것이다. 나는 스스로 도시 지향형 나그네라 여긴다.

근자 치앙마이 자유 여행을 다녀왔다. 태국 제2의 고도이자 북부 지역 중심지로 고대 란나 왕국의 수도. 자꾸만 이동하는 여정이 아니라 한곳에 머무르는 정중동 일정을 세웠다. 넓이보다는 깊이를 체화하고 싶었다. 다양한 서적을 읽으며 경험할 미션과 살펴볼 이국적 풍물을 정했다. 한데 무더운 날씨와 장기간 거주할 숙소를 잘못 선택한 탓에 아쉬운 탐방으로 끝냈다.

‘신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치앙마이 기후는 둘뿐인 듯했다. 제법 덥거나 혹은 엄청 덥거나 가운데 하나다. 다행히 아침저녁으론 선선하다. 대낮엔 활동이 여의치 않으니 밤의 문화가 발달했다. 덕분에 식물의 생육은 왕성하다. 울울창창한 나무는 한국보다 무려 여섯 배나 빨리 자란다고 한다.

사계절 대신 건기와 우기가 있는 나라답게 열대과일이 풍성하다. 뜨거운 태양을 머금어 더한층 짜릿한 과즙이다. 시장에도 마트에도 각양각색 과실들이 진열되어 이방인을 유혹한다. 작지만 아름다운 열대어처럼 울긋불긋한 열매가 먹음직스럽다.

태국에서 ‘마므앙’이라 부르는 망고가 두 종류라는 사실을 알았다. 주스나 생식하는 노란색 달콤한 망고와 소스에 찍어 반찬처럼 먹는 신맛의 초록색 망고. 개당 가격이 이천 원 남짓이니 국내에 비해 상당히 착하다.

열대과일 중에서 ‘사과’라는 명칭을 에두른 녀석도 있다. 파프리카를 닮은 로즈애플. 달면서 수분이 풍부해 그런 품명을 얻었다나. 냄새가 지독한 두리안에 도전하는 목록을 가졌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완수치 못했다. 쓰레기 또는 화장실 같은 향취를 품었다니 독특한 매력이지 않은가.

지난 유월 중국의 우루무치를 떠나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닿았을 때의 첫 느낌은 자유로움이다. 인민공원에 입장할 때도 공안들 검문검색이 행해지고, 기다란 몽둥이 들고서 은행 객장을 순찰하는 청경들 위압이 일순간 사라진 때문이다.

알마티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옛 이름 알마아타는 ‘사과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한데 정작 사과와는 인연이 없다고 하니 아이러니다. 1930년대 스탈린의 소수 민족 정책으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이 적잖다. 이따금 한글 간판 가게가 보이고 치즈를 샀던 ‘그린 바자르’에서 고려인 상인과 얘기도 나눴다. 한국어가 유창했다. 그들은 한국산 간장·된장·당면 등등 식품을 판매한다.

서울의 남산과 비슷한 알마티 꼭주베.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 숲으로 감싸인 도심을 조망한다. 뒤편 산자락엔 주말 별장인 다차가 즐비하다. 흐루시초프 시절 무상 배부된 땅에 지은 주택이다.

한쪽에 미국의 자매결연 도시가 선물한 청동제 조형물이 설치됐다. 푸른 녹이 끼어 고색창연하다. 대리석 기단에 얹은 작품으로 뭔지는 모르겠다. 그 옆쪽으로 꼭지와 잎사귀가 달린 대형 사과 형상물이 놓였다. 빨간빛 아닌 갈색의 철제물. 대구 시청에 근무한 친구의 카톡이 떠올랐다. 알마티는 대구시와 자매 도시라고. 머나먼 중앙아시아 국가와 사과로 맺어진 인연일까. 아무튼 하얀 꽃처럼 훈훈한 교류이길 바란다. 알마티는 자격이 충분하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