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은상

턱 걸터앉는다. 엉덩이로 전해오는 느낌이 듬직하다. 불편하던 속을 시원하게 비우고 남은 한 방울까지 마무리 할 때 떨리는 쾌감을 무엇에 비하랴. 세상 부러울 게 없이 편안하다.

해거름이 되면 장독대 구석에 엎드려 있던 요강단지들을 일으킨다. 깨끗이 단장시킨 놋요강은 조부모님 방으로 들인다. 번쩍거리는 황금빛의 기품과 우아함은 있으나 요강단지 들기도 힘겨운 노인들에겐 가벼워서 좋다. 부모님 방에는 순백의 바탕에 활짝 핀 모란당초나 아가리를 크게 벌린 호랑이가 그려진 사기요강이 들어간다. 호랑이의 강한 힘을 얻으려는 아버지의 바람과 도공의 혼이 더해져 포효하는 맹수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운치를 더한 모란꽃이 함박웃음을 짓는 그림은 넓은 치마폭에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부적 같다.

육남매가 자는 방엔 큼직한 오지요강을 앉혔다. 진흙으로 빚어 말린 것에 오지물을 입혀 구운 것이라 투박스럽고 칙칙하다. 놋요강이나 사기요강보다 싸고 크다는 이유로 아이들 방에 들여놓았다. 더러는 입구가 넓어 엉덩이가 빠지고 좁으면 볼일 볼 때 실수할까 조심을 한다. 옹기장이의 거친 손길이 설컹설컹 지나쳐서인지 오지물이 묻지 않은 자리마다 붉은 속살이 드러난다. 단지의 두루뭉술한 몸피에 흘러내리는 곡선은 후덕한 산골 어멈을 닮아 마들가리 하나 없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감당했다. 요강단지를 제 자리에 다 들여보내야 어머니의 긴 하루도 끝이 났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요강단지와 눈을 맞춘다. 요강과 눈도장을 찍지 않으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없다. 요강이 들어오지 않는 날 뒷간 갈 일이 생기면 난감하다. 문고리가 덜컹거리는 한 겨울 바람에 마당 끝에 있는 뒷간까지 가는 것도 귀찮지만 밤마다 귀신이 나온다는 곳이다. 화장실 밑에서 빨간 손이 기다리고 있다가 불쑥 올라오는 환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리를 꼬고 비비며 버틴다고 원초적인 배설본능을 해결 할 수 있는가. 로또의 조건을 걸고 졸음에 반눈을 뜬 동생을 꼬드겨 데려간다. 시원스럽게 볼일이 끝나면 급할 때 한 약속을 슬그머니 집어넣어도 불평하지 못한다. 같은 조건으로 해결할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어긴 약속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게 형제들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요강단지 속엔 딸에 대한 어미의 애틋함이 담겼다. 이 빠진 요강에서 당신의 시집살이를 엿본다. 어머니의 신행길은 하루에 기차가 두 번 다니는 산촌이었다. 기차역에 내려 십리 길을 걸어가야 했다. 오랜 시간 가마를 타고 갈 때 신부의 요의는 난감한 일이다.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안 외할머니는 가마에 챙겨야 할 요강 속에 목화솜을 넣어 조용히 볼일을 보게 했다. 하늘도 막을 수 없는 생리현상을 해결해주기 위한 애틋한 어머니의 정이다. 당신은 결혼 첫날부터 동행했던 요강을 어머니라 여기며 지어미로, 며느리로의 고단함을 쏟아 놓았다.

잠결에 듣는 오줌발소리는 셈여림이다. 돌아가며 내는 식구들의 크고 작은 소리가 오지요강의 울림통을 돌면서 밤새도록 이어진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은 이들도 어미의 자궁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랐다. 요강단지 앞에 서 생명의 근원인 심벌을 내놓고 들고 나지만 격식을 차리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요강단지가 모태를 닮았기 때문일까. 한번 안았으면 온몸으로 품고 비밀을 지키기에 은밀한 속내까지 털어 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강은 밤새도록 궂은일을 도맡아 식구들의 근심을 덜어주는 해결사 몫을 톡톡하게 해 주었다.

여섯을 홀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깊고 넓은 오지요강이지만 한창인 아이들이 밤새도록 내린 것이 모이면 단지의 수위가 위험해진다. 삼경쯤에 요강단지를 한번 비워내야 아침까지 무사한데 찰랑거리는 요강단지를 거름 밭에 비우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다. 어쩌다 당신이 깜빡할 때면 범람한 물이 방으로 흘러 이불이랑 옷가지들이 엉망이 된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일은 배로 보태져 며칠씩 빨래하느라 골병이 들었다.

요강 속에서 은밀한 울렁임이 일어난다. 식구들의 비밀을 혼자 다 담고 눌러놓아도 때로는 오해나 실수가 고여 앙금이 된다. 비우고 햇볕에 말려야하는데 무작정 받아놓기만 하면 넘치거나 곪아 터진다. 사랑방의 어른이나 아버지가 당신들의 속을 다스리지 못할 때 만만하게 쏟아낼 곳은 어머니였다. 에매한 말들을 토해내도 낮게 엎드려 가슴을 쓸어내리며 묵묵히 참아냈다. 당신의 속을 모르는 자식들이 당치 않는 투정을 해도 자칫 발을 헛디뎌 실수라도 할까 숨죽이며 긴장한다. 손위 어른들은 말도 행동도 거르지 않고, 새끼들은 어미만큼 만만한 곳이 없다는 이유로 제 속에 담긴 찌꺼기들을 내놓았다. 식구들의 고민도 울분도 다 담아 수위가 당신의 목줄까지 올라오면 본능적으로 비워내고 다시 담을 채비를 한다. 한없이 비우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당신이 못마땅해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며 악다구니를 쓰다 심드렁해진다. 집안의 안녕을 위해 뱃심두둑하게 받아주는 당신이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를 내심 바라고 있지 않는가.

아들이 직장일로 고민을 내놓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지만 적응이 어려워 사표를 내야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답답하게 쌓인 제 속을 비워 시원하게 볼일을 끝낸 아들은 엄마만 알고 있으라며 뚜껑을 덮는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꾹 눌러 놓았지만 불안하다. 무작정 받아들이긴 했는데 하룻밤도 삭이지 못하고 남편에게 비밀이라며 털어놓았다. 그의 반응이 과하다. 아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자식에겐 조심하면서 아내에겐 거름망도 없이 좔좔 쏟아냈다. 잠잠히 담아두면 비울 때가 있으련만 한참을 삭혀도 목까지 차 오른 분이 넘칠 것처럼 출렁거린다. 요강단지 만큼도 받아 재우지 못하는 품이다. 자연의 운행주기에 따라 어김없이 하루를 열고 닫으며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오지요강의 융숭 깊은 속과 넓이를 언제 쯤 닮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요강단지에 꿀 담으면 꿀단지고 사탕 담으면 과자단지가 되었을 텐데 어쩌다 오줌단지가 되었나. 삭이지 못한 찌꺼기를 비우지 못해 얼마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뒷간대신 수세식 화장실이 집안에 자리 잡았다. 춥고 무서운 밤 바깥까지 볼 일보러 가는 것도 아침마다 요강비우고 닦을 일도 없다. 어른이나 남편을 하늘이라 여기며 참고 섬기던 것은 옛일로 밀려나고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맞장 뜬다. 수캐도 서서하는 볼일을 아내의 불편을 덜어 준다며 변기에 걸터앉아 해결하는 남자들이 늘어난다는데 과분한 배려와 변화가 낯설어 자꾸 서성거린다.

요강단지가 넘치는 낭패도 사라지고 여인들의 위상도 달라졌다. 속으로만 쟁여둔 찌꺼기들을 내놓아도 묵묵히 받아주던 오지요강이 그리워진다. 박물관에나 있을 오지요강에 멀어진 추억 하나 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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