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하는 시대…옛 자수와 현대소품의 결합 연구할 것"

자수공예 분야 대구시 달구벌 명인인 전순이씨가 손자수(기계가 아닌 손으로 놓는 자수)로 작업한 부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1969년 당시 만 13세 나이의 소녀는 한동네에 사는 언니들이 가져온 베개에 놓인 동백꽃 자수를 보고 첫눈에 매료됐다. 아름다운 색과 고운 자태에 빠진 소녀는 수를 놓기로 결심했고, 그날부로 다니던 중학교를 자퇴했다. 1학기가 시작된 이후 교과서를 몇 쪽 넘기지 않았던 따뜻한 봄날이었다. 학업을 뒤로 한 채 자수공예에 매진한 소녀는 50여 년이 흐른 지난해 ‘대구시 달구벌 명인’으로 선정됐다. 대구에서 자수공예 명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녀가 처음이다.

소녀 시절을 떠올린 전순이(65·여) 자수공예 명인은 “많은 아이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고 웃음을 지었다. 대구지역 중·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디자인학과 등에 재학 중인 대학생에게도 자수를 가르치는 그녀는 “기술발전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기계자수와 수(手) 자수 일명 ‘손수’가 결합한 자수공예를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전순이 자수공예 달구벌명인의 작품 사이에 달구벌 명인 명패가 전시되어 있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대구 섬유산업과 함께 한 자수 외길 50년.

전순이 명인이 자수를 결심하고 중학교를 자퇴하자 부모는 그녀를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고모에게 보냈다.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생각한 부모는 딸이 일본에서라도 학업에 매진하길 바랐다. 이러한 부모의 결단에도 전 명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수를 시작한 지 불과 3년 만에 대구 한 섬유업체에 들어가 자수 수정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대구에 섬유산업이 활발했던 시절이었다. 전 명인은 “대구 섬유산업이 활발했던 만큼, 자수에 관한 관심도 높았다”며 “당시 서구에서는 기계자수 붐(Boom)이 일었다”고 회상했다.

손으로 직접 자수를 놓았던 그녀는 1972년 3월부터 1998년 2월까지 무려 26년 동안 자수경력을 쌓는 동안 기계자수까지 섭렵했다. 인터뷰 당시 자수재봉틀에 앉은 명인이 가로·세로 30㎝ 크기 천에 네 잎 클로버와 매화꽃을 만드는 데는 불과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실력을 선보인 전 명인은 1998년 자수를 직접 제작·판매하는 가게를 차렸다고 설명했다. 섬유산업 발달에 따라 직장에서 다양한 자수기술을 체득한 덕분이다. 전 명인은 “배웠던 기술이 있었지만, 공식적인 자격증이 필요해 1996년 7월 기계자수공예기능사라는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했다”며 “직접 가게를 차린 후부터 본격적으로 자수공예 연구·개발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자수공예 분야 대구시 달구벌 명인인 전순이씨가 기계자수(재봉틀이나 자수 전용 기계로 하는 자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낮아진 자수공예 관심…각종 대회 출전으로 알려.

전순이 명인은 지난 2010년 제45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자수공예직종에 참여해 동메달(3위)을 획득했다. 하지만 자수공예 기능대회는 이 대회가 마지막이었다. 앞서 1998년부터 2003년까지는 기계자수와 손수 두 부문에서 기능대회가 치러졌고, 2004년부터 자수로 통합돼 대회가 진행됐다. 그러다 2011년부터 자수는 기능대회에서 사라졌다. 자수기능사 국가기술자격증 시험도 지난 2012년부터 폐지됐다.

전 명인은 자수공예가 점점 외면받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자수에 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기능대회에서 자수가 사라졌고, 자격증마저도 취득할 수 없게 됐다”며 “스펙(spec)을 쌓아야 하는 요즘 세대에게 자수가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수는 분명 전문적인 기술이다”며 “아직 자수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데, 다양한 방법으로 자수를 알리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수공예 분야 대구시 달구벌 명인인 전순이씨가 ‘대구광역시 달구벌명인 증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

전 명인은 자수와 다른 제품을 결합한 새로운 작품으로 각종 대회에 참여해 자수공예를 알리고 있다. 그녀는 지난 10월부터 준비해 출전한 ‘제6회 독도 기념품·디자인 공모전’에서 가죽에 수를 놓은 작품으로 장려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앞서 인조가죽에 수를 놓은 작품을 만든 적은 있었지만, 이번 공모전에서는 천연가죽에 처음으로 수를 놓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 명인은 오는 12월 2일 열리는 제50회 경상북도 산업디자인전람회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그녀는 “지금은 자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점차 자수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져 가는 것 같다”며 “자수를 활용한 작품을 각종 대회에 출품해 자수업을 조금이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이다”고 설명했다.
 

전양순자수박물관에 전시된 전순이 자수공예 달구벌명인의 ‘목련’ 작품, 이 작품의 특징은 꽃과 꽃술을 순수한 자수기법으로 섬세하게 표현했고 평면의 디자인을 3차원적인 입체로 전통기법을 현대 디자인으로 승화시켰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자수공예 퓨전으로 해법 찾는다.

전 명인은 자수공예의 미래로 퓨전(fusion)을 제시했다. 자수를 다른 소품과 결합하거나 기계 수와 손 수를 접목해 새로운 자수공예제품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자수를 배우는 학생들이 있다.

현재 전 명인을 찾은 대다수 학생은 옷 자수와 자수를 활용한 수선, 액세서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수가 상품에 가치를 더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실제 전 명인에게 배운 대학생 80∼90%도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

전 명인은 “디자인을 전공하는 계명대, 홍익대, 고려대 학생들이 졸업작품이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자수를 배우기도 한다”며 “자수가 디자인사업 쪽으로 응용되기 때문인데, 자수작품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명인이 지금까지 제작한 수많은 작품 가운데 500여 점은 직접 차린 자수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한 공간에 모으고 싶었던 그녀는 지난 2016년 3월 15일 서구 비산동에 전양순 자수박물관관’을 열었다. 전 명인은 이곳에서 주기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옛날에는 그냥 수를 놓아 벽에 걸어놨다면 이제는 다양한 소품과 결합해, 한 공간을 꾸미는 실내장식 목적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며 “학생들에게 먼저 어떤 수를 놓고 싶은지 물어보고, 직접 만든 작품을 활용할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명인은 자수용 한지 제조방법을 연구해 지난 3월 29일 단독으로 특허를 내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자수 관련 7개 기술을 특허청에 등록하기도 했다.

그녀는 “불과 25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자수기술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지금은 인건비가 낮은 나라에서 들여온 자수물품들과 비교하면 한국에서 손으로 한 땀씩 따는 자수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계 수는 정교하지 않지만 입체감이 뛰어난 장점이 있고, 손 수는 능률에서 떨어지지만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며 “시장성을 고려해 기계 수와 손 수를 접목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고, 다른 소품과 자수를 결합한 새로운 작품들도 계속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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