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 동상

그 아이의 아버지는 나바호족 인디언이었다.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은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자신의 땅을 침입자에게 내어 준 채 수백 킬로미터 밖으로 쫓겨났다 온갖 풍상을 겪고 가까스로 돌아왔지만 정복자들 마음대로 그려 낸 보호 구역 영토 경계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아이가 속한 나바호족은 되찾은 땅의 경관으로 먹고 살 수 있으니 다른 인디언 부족들에 비하여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남자들은 아버지들처럼 끊임없이 이동하며 양을 치고 엘크 사냥을 하는 대신 한곳에 붙박여 이미 잊어버린 자신들의 언어 대신 백인들의 영어로 관광 가이드 일을 했고 여자들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대로 양모 담요를 짜서 가족들과 덮지 않고 외지인들에게 팔았다. 태어나 자라 늙고 죽어 묻힐 자신들의 땅을 외지인들에게 보여주며 일 달러짜리 지폐 뭉치를 받는 일은 이유 없이 어딘가 겸연쩍은 구석이 있어 바삐 손을 감추게 했다. 전사였던 남자들은 사냥터와 전장 대신 인디언들 전용 바에서 대낮부터 술에 취해 흐느적거렸고 언제든 아이들을 백인들의 보호 시설에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태양을 반사하듯 빛났던 여자들의 눈가에는 굴종과 체념의 정서가 머물렀다. 인디언 아이들에게는 미처 꿈꿀 미래가 없었다.



사암에 물이 들고 나 만들어 낸 다양한 형상의 협곡의 지형 앞에서 사람들은 신이 나 핸드폰을 꺼내어 들고 그 돌을 딛고 올라서서 온라인에 자랑할 사진의 포즈를 취했다. 아이는 그 흔한 아이폰도 삼성폰도 엘지폰도 없었지만 관광객들에게 선심을 쓰듯 그들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주며 점차 어떻게 하면 파노라마 형식으로 배경을 잇대어 ‘좋아요’ 클릭을 유도할 수 있는지를 체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맞춤하게 구워 낸 빵의 바삭한 겉면을 떠올리게 하는 갈색 피부에 아몬드 모양의 눈을 가진 아이가 나타나면 하나 둘 핸드폰을 자진해서 건네주기 시작했다. 아이에게는 가이드 일을 총괄하는 인디언 아버지만 있었고 낳아 준 엄마가 곁에 없었다. 왜 그런지는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이 아니고 같이 가이드 일을 하는 마누엘라 할머니의 오지랖 덕에 짐작하게 되었다. 그녀의 얘기 또한 아버지처럼 모호하고 추상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이곳을 찾았던 관광객 중 한 명이 너희 엄마였다고 어느 날 다시 나타나 너를 원래 있어야 할 이곳에 다시 돌려놓고 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여자는 음험한 아시아인이었다고 덧붙이며 너는 아시아 여자들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도 경고했다. 아시아 여자들은 꼭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결국 가버린다는 그 말의 진의와 함의를 아이는 도통 짐작할 수 없었다. 누구나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비난할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아이가 어쩌다 가족들과 함께 온 아시아 소녀들을 가이드하게 되면 마누엘라 할머니는 아이 옆에 바짝 붙어 소녀들과 연락처라도 교환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는 시월이면 열일곱을 넘길 터였다. 그러면 아이는 보호구역 바깥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었고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대학에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이는 거기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다. 그건 바깥에 나갔다 다시 돌아온 주변의 형, 누나들의 모습 때문인지도 몰랐다. 많은 아이들이 약물, 술, 도박에 중독되거나 몸의 어딘가를 다쳐 돌아왔다. 때로는 작거나 큰 범죄의 가해자가 되어 고향에 영영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다. 나바호족들 사이에서는 무엇을 경험하고 잃었는지 스스로 이야기하기 전에는 묻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돌아온 이들은 종일 집에서 빈둥대며 자거나 그마저도 지겨워지면 초점 없이 풀린 눈으로 바깥을 종일 배회하며 서로를 괴롭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끌려 나가기도 했다. 총기가 떨어져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이드 일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어울리다 무언가 수가 틀리면 서로를 때리거나 심지어 죽이기도 했다. 아이는 그런 이들을 지켜보며 돌아올 떠남을 애저녁에 포기해 버렸다. 아버지는 그런 아이의 결심을 알았는지 내심 안심하는 눈치였다. 아버지는 같은 인디언 부족 여자들에게서 난 아이들보다 엄마가 없는 아이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눈치였다. 건장한 체구에 예전의 잘생긴 인디언 청년의 흔적이 아직 채 바래지 않은 모습의 아버지가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다 커다랗고 투박한 손으로 검은 곱슬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면 아이는 이미 사라져 버린 용감한 전사가 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 슬며시 몸을 뺐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아쉽지만 체념한 눈빛으로 아무 말도 없이 그런 아이를 자진해서 보내 주었다. 아이는 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없었고 무언가를 요구할 만큼 가깝지 않은 거리를 늘 유지했다. 그래도 때로 아이는 아버지가 그리웠고 다시 한 번 더 다가와 주기를 고대하곤 했다. 부자의 타이밍은 항상 어긋났다.



떠나지 않는 자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그 곳으로 찾아오는 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고 그들의 언어로 간단한 몇 마디를 주워섬기며 너스레를 떨어 주는 것이었다. 아이는 성실하고 명민해서 이것들을 제대로 빨리 몸과 마음에 새겨 넣었다. 아이가 사진을 SNS에 올리기 좋게 잘 가공하여 준다는 입소문은 빠르게 퍼져 어떤 관광객은 아이를 먼저 찾기까지 했다. 아이는 자신만의 별것도 아닌 노하우를 동료 인디언들에게 쉽사리 발설하지 않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나이든 인디언들은 아이가 마법이라도 쓴다고 생각하는 듯 신기해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일이 마무리되고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의 뷰트 사이로 해거름의 오렌지 빛 석양이 넘실될 때면 아이는 흙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별다른 일도 없는데 하염없이 울었다. 무언가 그립고 한없이 서글픈데 대체 왜 그런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이는 자신의 나이에 마땅히 가지고 즐길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빈곤한 예시에 울울했고 꿈꾸고 기댈 수 있는 내일에 대한 설명이 고파 막막했다. 울고 나면 건조해서 하얀 버짐이 핀 손등으로 눈물을 쓰윽 훔치고 정처 없이 마냥 걷고 또 걸었다. 넓디넓은 땅 위를 발바닥이 욱신거릴 정도로 지칠 대로 걷다 보면 배가 고파왔고 먹는 일을 떠올리면 견딜 만해졌다. 그러면 어김없이 내일이 왔다.





그 때 아이는 그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열 명 남짓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 틈에 홀로 끼어 있었다. 아이는 아시아 여자들의 나이를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무표정으로 있으면 언뜻 조숙한 십대 소녀로도 보였고 얼굴 근육을 움직이면 생기는 눈가의 까마귀 발 같은 주름이 중년처럼도 보이는 그 여자는 검은 방수 재질의 넉넉한 배낭을 메고 은색 보냉 물병에 담긴 물을 수시로 마시며 다른 관광객들과는 달리 아이에게 자신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핸드폰을 맡기지 않은 유일한 여자였다. 많이 마주치는 여느 동양인처럼 가느스름한 눈매가 아닌 아이처럼 아몬드형의 동그랗고 큰 눈에 하늘하늘하고 아담한 체격도 언뜻 비슷했다. 여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발가락이 다 드러나고 뒤축이 없는 하얀 슬리퍼를 끌고 와서 그 사이로 끊임없이 들어가는 고운 흙을 수시로 탁탁 양발을 번갈아 가며 털어 냈다. 때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질 듯 위태위태해 보이는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엽기도 하고 불편해 보이기도 해서 아이는 이상스레 신경이 쓰였다. 여자는 사진을 찍을 것도 아니면서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필수 코스처럼 단체 사진을 찍는 두 암벽이 만나려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로 결심한 것처럼 형성된 틈새 부분에 구태여 그 신발을 신고 미끄러져 가며 올라가다 갑자기 아이를 지목하며 액센트가 심한 영어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등과 엉덩이를 힘껏 밀어주었다. 여자는 이윽고 자신이 목표로 향했던 곳에 발을 딛고 올라섰다. 고맙다는 말 대신 여자는 아이를 보고 빙긋 웃었는데 커다란 눈이 거의 감길 듯하며 짓는 눈웃음에 이상스럽게 아이는 순간 가슴이 저릿해서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여자는 그곳에서 쉽사리 내려오지 않았다. 그곳의 전망은 넓지도 근사하지도 않았는데. 다만 같은 색깔의 조금 다른 기기묘묘한 모양의 또 다른 벽이었는데 여자의 시선은 그곳에 가 닿아 붙박인 듯 떨어질 줄을 몰랐다. 빛이 함부로 침투하지 못하는 대신, 무람없이 드나든 물의 흔적은 사암의 굽이치는 형상에 또렷하게 스며들어 말라 버린 물이 여전히 들고나는 듯한 착각을 자아내게 했다. 어디에선가 좁은 균열을 뚫고 가까스로 들어온 빛은 여자의 시선이 가 닿은 벽에 내리 꽂혀 아른거렸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관광객들이 각각 다른 언어로 일행들과 소통하는 웅성거림이 묘한 반향을 일으키고 걔 중 몇 명이 자신들의 핸드폰을 건네주며 아이에게 사진을 부탁했지만 아이의 마음은 이미 그 여자에게 가 있어 평소보다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흔들리면 흔들린 대로 시시각각 빛이 스며들며 변주되는 색감의 벽은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사람들의 사진을 몽환적으로 만들어 불평은 없어 다행이었다. 여자는 그제서야 함부로 흩어졌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미끄러지며 그곳을 내려와 아이 앞에 섰다. 좁은 지형상 둘의 거리는 속삭임도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아이는 떨렸다. 뭐라도 빨리 말을 하고 싶었지만 관광객들에게 주워 들어 알고 있는 유치한 한국어 인사 몇 마디만 맴돌았다. 반면 여자는 아이에게 별로 나서서 말을 걸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안녕하세요.”

아이는 기다렸다. 여자의 반응을. 여자는 처음에 자기에게 한 인사인지 모르는 듯 딴청을 부리다 뒤늦게 알아차린 듯 다시 씩 웃었다. 커피에 변색된 듯한 노란 빛깔의 치아는 자연스럽게 가지런했다. 여자는 서투른 영어로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 일을 좋아하냐고도 물었다. 아이는 이렇게도 단순한 질문에 성심을 다해 길게 얘기했고 여자는 잘 알아들은 것 같지 않아 아쉬웠다. 아시아 여자를 조심하라며 닦달하던 마누엘라는 단체 중국인 관광객 덕에 이쪽으로는 시선조차 줄 겨를이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 캐년의 관광 시간은 팀마다 고작 오십 분, 아이는 이 터널을 통과하는 마디마디가 아쉬워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여자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협곡 안에서 전문적인 사진작가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제는 스마트폰 셀카봉보다 보기 어려운 카메라 삼각대 다리를 바닥에 고정시키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가끔씩 초벌구이를 기다리는 토기를 연상시키는 벽을 손으로 살며시 쓰다듬어 보고 손마디에 묻은 흙을 비벼 털었다. 이따금씩은 기다리는 소식이 있는지 습관적으로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이는 찬찬히 이런 여자를 지켜보다 용기를 내어 여자 옆에 다시 붙어 섰다. 여자도 다행히 이번에는 아이의 걸음에 보조를 맞췄다. 여기가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여자는 난데없는 질문에 살짝 놀란 듯했다. 아니. 별로. 그럼 어디가 좋아요? 다 같아. 나한테는. 아이는 여자의 대답에 김이 빠졌지만 그래서 더 여자가 궁금했다. 여기에 그러면 왜 왔어요? 핸드폰을 아이에게 건네려던 백인 할머니는 둘의 대화를 엿듣고는 체념한 듯 다시 핸드폰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 지그시 셀카 모드를 눌렀다. 그녀의 파란 눈동자에 숨어 있던 장난기 어린 소녀가 떠오르자 만족한 듯 자리를 비켜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몰라. 내가 사는 곳에서 견디기 힘들었어. 그냥 좀 슬퍼서. 여자는 고개를 들어 아이를 제대로 다시 찬찬히 바라봤다. 나도 항상 조금 슬퍼요. 그래? 너도? 넌 이곳이 좋아? 싫지 않아요. 싫지 않아서 못 떠나는 거예요. 아이는 여자와의 대화 중간 중간 자신의 직분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관광객들의 사진을 계속 찍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뒤처지는 여자가 자기와 보조를 맞추어 걸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몇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여자는 다행히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아이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부족의 말처럼 낯선 한국말 대신 이제 자기의 살처럼 되어버린 영어로 계속 말을 시킬 수 있을 테니까. 결혼했어요? 아이는 다시 뒤돌아 여자를 찾았다. 여자는 이제 깨끗이 모래를 턴 신발을 아예 포기해 버렸는지 모래 터는 동작을 그만두고 보기에도 발바닥이 버석거리는 신발을 그대로 질질 끌고 따라오고 있었다. 응. 오래 전에. 그럼 아이도 있어요? 이젠 없어. 아이는 그 문장을 되뇌었다. Not any more. 그렇게 대답하는 여자는 갑자기 한참 늙어 보였다. 어쩌면 여자의 나이는 아이보다 아주 많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이는 어린 소녀를 기다린 게 아니었으니까. 그럼 있었어요? 여자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다시 핸드폰을 꺼내려다 주춤했다. 사람이 있었다가 없다면... 개인적인 얘기야. 아무한테나 할 수 없는... 그렇군요. 아이는 그녀에게 특별하고 유일한 그래서 내밀한 것들을 다 털어놓을 사람이 아닌 자신을 의식하니 가슴 어딘가에서 서걱거리는 모래 바람이 들이치는 것 같아 난감했다. 당연한 일인데... 날카로운 인식이 그 모래 바람을 거두어 갔다. 아이는 끝없이 언제나 건조해지고 싶었다. 사막처럼. 축축하고 끈끈한 것은 질색이었다. 그건 지는 일이니까. 나바호족은 결국 패배에 수긍했지만 항복을 소화하지 못하는 부족이었다. 아이는 그런 나바호족이었다. 난 아이를 가지지 않을 거예요. 왜? 아이를 가지면 여기에서 떠나야 해요. 어디로? 어딘가로. 여기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 나랑 똑같아질 거예요. 그건 싫어요. 그 아이도 너처럼 이렇게 사진을 찍어 주며 살게 되는 거야? 아마도.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있거나 싸움에 휘말리면 평생 감옥에서 썩을 수도 있고...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풀리기도 해요. 떠나는 것도 쉽진 않지만 아이가 있으면 그러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럼 어디로 가? 아이를 가지면. 그건 나도 몰라요. 하지만 확실한 건 여긴 아니에요. 사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예요. 우린 주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어디에서든 결국 계속 쫓겨나요. 나도 알아. 원래 여기가 너희들 땅이었는데 너희들이 손님처럼 되어 버렸다는 걸. 유감이야. 난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그런 오래 된 얘기에는 관심 없어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노력한다고 바꿀 수도 없는 거잖아요. 아버지는 숙명에는 반항하지 말고 고개를 숙이는 게 맞대요. 여긴 참 예쁜데. 안쓰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눈빛이 아이에게 와 닿았다. 여자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일순 아이와 멀어져 버렸다. 아이는 출구 쪽으로 미리 나가 협곡을 안전하게 다 빠져나온 관광객들을 기다려야 했다. 사람들은 항아리 모양의 협곡의 틈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기둥을 새삼스럽게 올려다보며 시간이 다 되어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보기엔 별 것도 아닌 것에 흥분하며 끊임없이 사진을 찍으며 동행한 이들과 감탄사를 나누었다. 더 이상 그것들이 신기하거나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는 마음이 어쩐지 좀 짜증스러웠다. 아이는 이제 별로 감동할 일이 없었다. 햇볕 알레르기 때문에 입은 긴 팔 소매 옷들은 벌써 땀에 절어 시큼한 냄새가 났다. 시원하지 않은 생수지만 미리 약속한 거였기에 관광객들에게 나눠주어야 했다. 아이는 처음으로 자기 몸에서 나는 체취가 거슬렸고 마음대로 마음에 드는 사람과 여유롭게 퍼더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이 일이 귀찮고 싫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비로소 이 땅의 한때 주인이었다는 감각이 희미하게라도 돌아오는 저물녘의 사라지는 태양의 휘장 속에서 호젓하게 여자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아직 묻지 못한 많은 이야기와 듣지 못한 수많은 사연이 있었다. 출구로 나온 여자는 아이의 건너편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갑작스런 밝음에 눈이 부신지 눈을 찡그렸다. 여기에서 십분만 올라가면 여자를 데려갈 지프차가 와서 대기하고 있을 예정이었다. 여자는 그 차를 타고 영영 가버릴 것이었다. 아이는 수시로 여자와 단둘이 있을 시간을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애가 탔다. 마누엘라 할머니가 아이를 저만치에서 초조하게 시선으로 찾고 있었다. 할머니의 시선은 우연히 그 여자에게 가 닿았다. 아이는 용기를 내어 다급하게 여자에게 다가갔다. 근처에 있던 아이가 사진을 찍어 주지 않은 백인 할머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난 핸드폰이 없어요. 그래도 연락처 줄 수 있어요? 여자는 당황한 듯했다. 핸드폰이 없는데 어???게 연락처를 줘? 이메일 주소라도요. 넌 아직 너무 어려. 여자는 눈을 찡긋하며 살짝 웃었지만 어조가 단호해서 날카로워 보였다. 넌 여기에 남고 나는 가잖아. 그게 맞아. 여자는 어색하게 살짝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아이는 흔들렸다. 그 여자가 가자고 하면 어디든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머물 곳도 가야 할 곳도 없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여자에게 들릴까 봐 초조했다. 하지만 여자는 일말의 망설이는 기척도 없이 아이에게서 금세 떨어져 출구로 연결되는 가파른 오르막길에 깔아 둔 판자가 잇대어진 길 위에 이미 가 닿아 있었다. 여자의 등위의 배낭 앞주머니에 아이가 챙겨 주지 않은 생수 병 주둥이가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더위에 지치고 호기심이 사라져 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촘촘한 인간띠를 이루며 오르막에 정체되어 있었다. 그 속의 여자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이는 계속 그 생수병 주둥이와 여자의 어깨까지 드리워진 연갈색의 웨이브 머리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아이는 형용하기 힘든 서운함으로 울고 싶어졌다. 여자는 아이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마지막으로 일행에 계속 뒤처지던 비만한 노인 부부 관광객까지 다 올라가고 나서야 아이의 차례가 왔다. 미지근해진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아이는 다람쥐처럼 그 길을 언제나처럼 달음질쳐 잽싸게 올라갔다. 여자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대신 흙먼지를 일으키며 떠나는 연회색 지프자의 꽁무니가 아이의 눈 안에 들어왔다. 그 여자를 본 이후로 헤어지기까지의 채 사십 분이 되지 않았던 시간. 아이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조한 사막의 지평선은 아직도 힘겹게 땀을 뻘뻘 흘리며 가 버릴 태양을 이고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마지막 팀이었다. 타박타박 그 지평선으로 걸어가는 길, 아이는 벌써 여자의 눈모양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자꾸 그 모래가 자꾸 들어가 자기 발바닥마저 간질간질하게 느껴지게 했던 여자의 하얀 신발과 양발을 번갈아 털던 실루엣만 떠올랐다.



관광객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 휑뎅그렁해진 차광막이 쳐진 차량 대기소 테이블에 마누엘라 할머니가 홀로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김빠진 표정으로 아이를 맞았다. 그녀의 아들들은 외지에 나가 백인 여자와 결혼해 근본주의 기독교인이 되었거나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거나 술김에 자신에게 욕을 한 백인을 때려 감옥에 있었다. 남편은 오래 전에 그녀를 떠나 다른 여자들과 살림을 차려 또 다른 대가족을 만들었다. 재미있게도 이미 늙어버릴 대로 늙어버린 그 묘한 관계의 노인 둘은 젊은 시절 해묵은 감정들은 다 잊었는지 세상없이 가까운 이웃 주민들인 것처럼 서로에게 무람없이 친밀하게 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한때 고주망태가 된 남편을 백주 대낮 시장통에서 샌드백처럼 두들기던 마누엘라가 자기에게 돌아오지도 않은 그 탕아의 어깨에 한 손을 척 올리고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재미있게 얘기하는 모습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나치곤 했다. 별 낙도 없이 우울할 것만 같은 인생처럼 보이는데도 또 마냥 그렇지도 않은 듯 그녀는 인디언 축제에서 가장 신나게 춤을 추고 술을 진탕 마시며 걸걸한 목소리로 잊혀진 그녀들의 노래를 성심껏 한이 서린 목소리로 뽑아내어 가사도 못 알아듣는 젊은 여자들까지 저마다의 숨은 사연으로 있는 대로 울렸다.

“수고했다. ”

마누엘라는 아이 앞에서 아쉬운 듯 담배를 비벼 껐다. 꽁초를 그녀는 바닥에 버리는 대신 자신이 직접 기워 붙인 치마 주머니에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마냥 잊지 않고 챙겨 넣었다. 주머니는 벌써 그녀가 그렇게 모은 꽁초들로 불룩했다. 그녀의 얼마 안 되는 낙이었다. 아쉬울 때 다시 그것들에는 불이 붙었다. 마누엘라에게 쓸모없는 것은 넘치는 감정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소한 일에 흥분하거나 울거나 절망하는 것을 못 견뎌 했다.

“가질 수 없는 건 욕심을 안 내는 게 맞아. 갈 수 없는 곳은 보지도 마. 안 그럼 불행해지니까. 뭐 하러 그렇게 살아. 쉽게 가. 태어난 대로 흘러가는 대로.”

아이는 뭐라고 대답할 힘이 없었다. 그건 마치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아 답을 필요치 않은 것처럼 보이는 선문답이었다. 마누엘라는 물끄러미 아이의 짙은 눈썹이 차광막처럼 감싸고 있어 신비로워 보이는 다갈색 눈동자를 바라봤다.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까마귀발 같은 그녀의 주름이 번들거렸다. 마누엘라의 주름의 골마다 느른한 햇빛이 함께 와 고여 빛났다.

“힘들지 않은 건 없어. 그게 사는 거야. 넌 잘 할 거야. 난 알아. 다른 아이들처럼 되지 마.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는 거야. 직업도 가져. 이런 거 말고. 제대로 된. 그러면 백인들처럼 살 수 있을 거야.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다. 곁에서 이렇게 그냥 나이 드는 것보다는 떠나더라도 말 할 거리가 있게 사는 게 효도다.”

마누엘라는 항상 모순 그 자체였다. 그녀가 말한 태어난 대로 살라는 조언은 이미 가뭇없었다. 아이는 속으로만 반응했다. 사실 아이도 여기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실패하더라도 도움닫기를 해보는 것이 후회가 덜 남을지 확신이 없어 항상 마음이 흔들리던 터였다. 마누엘라에게는 애석하게도 이런 조언들을 아낌없이 쏟아 부을 손주가 없었다. 결혼한 아들이 낳은 혼혈 딸아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정말 아들이 그 아이를 낳은 게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러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 아이 이야기를 자청해서 해본 적이 없었다. 아들들은 떠나고 난 후에 일할 때나 먹을 때나 심지어 잘 때도 넓은 끈으로 자신들을 묶어 한몸처럼 붙이고 다니며 키웠던 엄마를 찾지 않았다. 사람들은 남편도 자손도 곁에 없는 그녀를 속으로 무시하면서도 그녀의 오지랖만은 너그러이 받아 주었다. 덕분에 마누엘라는 마을 전체를 감싸 안고도 남을 치마폭을 흩날리며 사람들의 대소사를 챙기고 뜬소문을 실어 날랐다. 이런 마누엘라에게 아이가 친손자처럼 마음이 쓰이는 것은 별난 일도 별 일도 아닌 셈이었다. 자신의 아이들 대신 다른 아이의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눈 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저어함이 비치곤 했다. 사랑하지만 넘어갈 수 없는 선을 의식하는 그녀의 몸짓에는 항상 어떤 저지선이 있었고 아이는 그 경계가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아니면 마구 넘어와 아이를 만지고 아이의 인생까지 더듬곤 할 것이라는 걸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가요.”

“그래, 그래. ”

아이는 마누엘라의 오른 손을 잡아 지지대 역할을 하며 그녀를 일으켰다. 사방으로 탁 트인 광막한 대지는 경계도 한계도 없어 순간 둘은 아연해졌다. 하늘과 맞닿은 선을 지워 버리려는 듯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현실은 항상 이 언어로 도저히 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거대한 대지 안에서 무력해지곤 했고 그것은 인디언들을 죽지 않고 살게 하는 힘이었다. 인디언에게 현실은 이상보다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살면서 삶은 꿈처럼 아득해지곤 했다. 그래서 너무 아파도 때로 쉬이 넘겼다. 아이는 손차양으로 태양을 이겨 보려 했다.

“그래서 돼?”

마누엘라는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고스란히 앞니들이 빠져 버린 합죽한 입으로 오랜만에 키득거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열심히 할 거야?”

아이는 무엇을 열심히 할 건지 궁금해 하지도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아이는 마누엘라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이까지 구태여 그녀의 서글픔에 한 자의 키를 더 높일 필요는 없었으니까. 아이는 아버지만큼의 거리를 마누엘라에게도 느꼈다.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래서 곁에 있는 게 좋지만 언제든 뒤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넌 착해. 다른 애들처럼 술 먹고 사람을 때리지도 않을 거고 엉뚱한 여자애를 임신시키지도 않을 테지. 넌 성공할 거야. 그러고 나면 여기를 나가도 좋고 여기에 너가 낳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와도 좋아. 난 알아. 너희 아버지가 부러워. 그 여잔 후회할 거야. 두고 보라구. ”

아이는 또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아이를 어려워했고 그 여자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같이 해 지는 걸 봐요. ”

“매일 똑같이 지는 해를 뭐하러?”

“아니에요. 그 때 그 때 달라요. 빛깔도 냄새도 달라서 볼 때마다 새로워요. 난 여기에서 그게 제일 좋아요.”

둘은 천천히 자신들의 일터가 되어 버린 그곳을 떠났다. 해가 지려면 같이 밥을 먹고도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터였다. 아이는 저녁밥을 먹고 나면 손에 완성 못한 퀼트 담요를 들고 까무룩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 버리곤 하는 마누엘라와 함께 일몰을 보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지만 아이의 제안에 마누엘라가 행복해하며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할 거리를 가진 것만으로 마누엘라가 만족해할 거라는 걸 알았다.

들었어? 걔와 일몰을 볼 뻔 했다니까. 그 여자와 보지 못해도 괜찮은 것 같았다. 아이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견딜 만해졌다.

“그런데 아까 그 여자하고 무슨 얘기했어?” 역시 마누엘라였다. 아이는 못 들은 척 마누엘라를 재촉했다. 마누엘라도 답을 바라고 물어본 것은 아니라는 듯 아이의 대답을 독촉하지 않고 체머리를 흔들며 작달막한 체구로 아이와 걸음의 보조를 맞췄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정말로. 다 잊어버렸어요. 이미. 건조한 더위를 식히는 청량한 바람이 난데없이 휙 아이의 달아오른 뺨을 스쳤다. 한창 이기려고만 하는 태양을 다독이며 집으로 보내는 손짓이어서 반가웠다. 인디언 여인은 이제 그녀를 뺀 아무도 제대로 부를 수 없는 귀향의 노래 한 곡조를 구성진 목소리로 실을 자아내듯 뽑아내기 시작했다. 넘실대며 퍼져 나가는 소리의 진동이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이제 정말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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