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소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열 사람 죽으러 가는 데는 가도 한 사람 살러 가는 데는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제 한 목숨만 살겠다고 너절하게 행동하는 사람과는 절대로 상종하지 말라는 뜻이다. 당이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는 침묵하더니 총선이 다가오자 당 혁신안이라며 중진 퇴진론을 외치고 있는 자유한국당 초선의원들을 보고 있자니 떠오른 말이다. 자유한국당 위기 원인 중 하나로 ‘침묵하는 초선’이 거론되는 마당에 중진 용퇴를 요구할 자격이 과연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이 당대표가 목숨을 걸고 대(對) 정부 투쟁을 위해 단식을 결행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유한국당 초선들의 결기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 자유한국당 초선들은 당이 위기에 처하면 전면에 나서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당(黨) 정풍운동(整風運動)에 언제나 앞장섰다. 그러나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초선의원들의 존재감은 역대 최악 수준인 것 같다. 정치를 모른다면 박근혜 정부 시절 「묻지마 공천」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무엇인지 알고도 당의 위기 앞에 침묵을 지킨다면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이유는 간단할지 모른다. 바로 「설마 병」이다, ‘설마 초선에게 공천을 안주기야 하겠나?’라는 생각에 침묵하고 머리 숙여 있으면 그냥 공천받을 것으로 믿고 있는 모양이다. 이래서 자유한국당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선거는 새 인물인 초선의원을 많이 배출한 정당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초선의원의 비율이 높다는 점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실망하고 국회에 대해 불신한다는 방증일 거다. 그래서 국민들은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초선 의원들을 통해 대한민국에 신선하고 개혁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길 기대한다. 실제로 과거 초선 국회의원들은 정치적으로 미숙함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기득권과 패권주의에 저항하며 당의 변화를 일으키고 활력을 불어넣는데 앞장서 왔다. 그들은 개혁의 추동세력으로서 거친 들판을 질주하는 패기와 야성(野性)적 기개로 대의(大義)와 더 나은 대안을 위해 치열하게 논쟁하며 변화와 혁신을 외쳤다.

이번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초선의원 중 절반은 지난 보수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낸 뒤 공천받아 20대 국회 초기까지 여당의 초선의원으로 혜택을 누려온 사람들이다. 자유한국당 전체의원 108명 중 초선의원은 43명으로 당내 최대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보신’과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다. 또한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보수가 지리멸렬하게 된 상황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이라는 ‘행동’으로 당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권자들이 과연 어느 당에서 희생과 헌신, 책임감을 느끼겠는가.

자유한국당 초선의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아름다운 자기희생에 앞장서야 한다”며 “그 흐름의 물꼬를 트기 위해 누군가의 헌신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묻는다. 왜 초선의원들은 먼저 ‘나부터 불출마’선언을 하지 않는지 말이다.

자유한국당이 존폐론까지 불거질 정도로 총체적 위기에 처한 것은 결코 지도부 탓만은 아니다. 초선의원을 포함한 20대 국회가 법안 처리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며 사상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얻은 점까지 거론하면 자유한국당 초선의원들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반구저신(反求諸身·잘못이 있으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책임을 구해야 한다)의 자세와 멸사봉공(滅私奉公·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한다)의 정신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용단을 내리길 국민들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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