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 수필가·전 상주문화회관장
김종한 수필가·전 상주문화회관장

내가 국민학교 취학통지서가 나온 자유당 시절은 검정 가마솥이 걸려있는 재래식 아궁이에 나무나 쌀 껍데기 왕겨, 짚단으로 불 지펴 밥하고 국 끓이고 아랫목을 따끈하게 달군 원시시대의 삶을 살았다. 앵두나무가 마당 우물물 먹고 익기도 전 시퍼런 홍시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원조로 옷도 얻고 우유 과자로 연명했다.

소달구지가 운송수단으로 산 넘고 물 건너 보통 10리 정도는 걸어서 다녔다. 고개에 오르면 마을이 보인다. 집집마다 한 폭의 그림 같이 흰 연기가 굴뚝에서 몽실몽실 피워 오른다. 골목을 돌면 잠자리와 나비가 날아다니고 흙냄새, 풀냄새, 소여물 삶는 냄새가 토속 고향 향수를 풍긴다. 사람 사는 소리와 냄새에 인정이 넘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유대한 우리의 국민할매(할머니 사투리)가 집에 오시면 구들장 방바닥에 앉고 일어설 때마다 “아이고” 소리를 자주 하시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6·25 직후로 사격장에서 전투기 뜨는 소리만 들어도 전쟁 난다고, 비가 오면 못이 터져 물난리 난다고‘아이고’타령이 몸에 배어 항상 긴장하고 불안했던 시절이다.

밥 먹을 때도 복 나간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귀한 밥알을 남기지 말라고, 학교에 갈 때는 좌측통행하고 길조심, 차 조심 걱정은 매일 잔소리같이 하셨다. 꿈자리만 시끄러워도 사사건건 조심조심, 심지어 정월에 토정비결이나 신수를 보게 되면 길 잃어 집 못 찾아온다고 북향으로는 멀리 가지도 말고, 여름철에는 물가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몇 달간을 걱정하는 우리 모든 할매다.

옛날에는 환갑이 가까운 쉰 중반만 돼도 상 어른으로 긴 담뱃대를 물고 편히 쉴 뒷방 신세다. 백세시대 요즘은 씀씀이가 많아져 환갑과 진갑을 넘겨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각박한 생존전쟁과 처절한 약육강식의 삶에 갖은 산전수전과 애환을 겪어가며 자녀를 뒷바라지한다. 수명 연장으로 연로한 부모도 앞 바라지의 부담을 안고 출산 열풍에 태어난 6·25 베이비붐 세대는 앞은 부모 뒤로 자식으로 부딪치고 받치는 고달픈 인생살이다.

3대가 옹기종기 사는 대가족에 식구마다 진학 걱정, 취업 걱정, 결혼 걱정, 건강 걱정, 심지어 먹고 살 걱정은 물론 죽음 걱정까지 당겨서 몽땅 도맡아 한다. 앞으로 닥쳐올 온갖 고민과 걱정거리를 미리 생각하게 되어 ‘아이고’ 탄식이 어르신네 입에 베이는 것은 당연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이가 들면 걱정이 일상이다.

집집이 안으로는 우환과 고민이 있지마는 겉으로 멀쩡하고 태연하다. 그래야 긍정적이고 즐겁게 살아가려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활기에 넘친다. 육신은 물론 맑은 영혼과 정신건강도 생각한다면 마음가짐을 느긋하게 하여 명랑한 분위기 조성에 합승하자. 더불어 사는 세상 행복한 여생을 위해 가시밭 인생길 헤쳐 가는데 동참하자.

젊으나 늙어나 인간의 본능은 추한 모습은 감추고 아름다워지려고 애써 가꾸고 모양을 낸다. 고치고 다듬고 가꾸어 길에 나서면 미남 미녀 천사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라고 돈 들이고 신경 쓰면 몰라보게 달라져 분위기 살고 활기 넘쳐 살만하다. ‘돌다리를 두드리면서 건너듯’ 넘어질까 걱정하는 ‘국민할매’ 자식 사랑 우산 안에서 이 순간까지 우리가 지구 상에 살아있는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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