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10월 중 거주자 외화예금동향’을 보면 달러화 예금 잔액이 146억4000만 달러(약 17조3000억 원)였다. 거주자외화예금은 내국인과 국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이 은행에 맡긴 외화를 말한다.

외화예금 중 달러화 예금 규모가 지난 9월 말 이후 한 달 만에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2012년 6월 외화예금 통계 공표 이후 가장 많은 금액이다. 자산가들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달러화 사재기로 나타난 것이다. 기업의 달러화 예금도 9월 말보다 43억4000만 달러 불어난 528억4000만 달러나 됐다. 단순히 환율하락으로 기업이 달러화 매도 시기를 미룬 것으로 풀이하기 어려운 증가세다. 국내 개인과 기업이 보유한 총 달러화 규모는 지난 10월 말 674억 8000만 달러나 된다.

이처럼 고액 자산가나 기업이 달러화 사재기를 하는 것은 우리 경제 전망을 암울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출이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1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4.3% 감소한 441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수출 감소가 지속 된다는 것은 경기의 장기 침체를 의미한다.

여기에다 미-중 무역분쟁,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군사적 도발, 지소미아 사태 등 미·일과의 관계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제 위기감과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 보다 크다. 이뿐인가. 반기업 정서에 부동산 규제 강화, 리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변경)설까지 겹쳐 부자들이 안전자산에 돈을 묻고 있다. 부자들은 해외 부동산 매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내국인 해외 부동산 매입은 2.5배 늘었다. 금과 은을 사재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정부는 고액 자산가들이 왜 달러나 금·은 사재기를 하는 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한국의 올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2.0%로 내렸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5%에서 2.3%로 하향 조정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지는 “한국 경제가 반세기 만에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2009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회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런데도 정부와 청와대는 경제 자화자찬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논설주간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