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제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충돌 속에서 막을 내렸다. 선거법과 검찰개혁법 등을 담은 패스트트랙 법안을 두고 여당의 살라미 임시국회와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남아 있어 극한 대치 가능성은 여전하다. 분명한 것은 20대 국회가 막판까지 국민에게 실망과 정치혐오만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20대 국회는 외줄타기처럼 불안하기만 한 한반도 안보 정세와 좀처럼 튀어 오를 줄 모르는 한국 경제 등 안팎으로 맞는 누란(累卵)의 형세 속에서 출발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무를 지녔던 20대 국회를 국민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단언컨대 20대 국회는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국회였다.

국회 개원

국민들은 지난 총선을 통해 20년 만에 3당 체제와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정국을 만들면서 20대 국회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기존 양당체제의 비생산적인 대결과 분열의 정치를 끝내고 대화와 타협으로 민생을 위한 새로운 협치(協治)를 펼쳐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20대 국회 의안 본회의 처리율이 30%를 밑도는 역대 최저 수준이라는 수치를 굳이 들지 않아도 이번 패스트트랙 법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보여준 극단적 대결 행태는 국민들에게 실망과 허탈감을 넘어 분노케 했다. 많은 국민이 애타게 국회 통과를 기다려온 민생과 직결된 법안들은 뒷전으로 하고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거제 개편안을 두고 여야가 몸싸움이나 하니 국민들 눈에는 결국 의원들의 밥그릇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거다.

정치의 실종이라는 비판을 받는 데에 가장 큰 책임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민주당은 여야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제1, 2야당을 제외하고 ‘4+1’협의체(민주당ㆍ바른미래당ㆍ민주평화당+가칭 대안신당)를 만들어 내년도 예산안과 선거제 개편, 공수처 신설 등의 중요한 국가적 문제를 다뤘다. 상임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등의 절차를 무시하고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정당 협의체를 만들어 나라 곳간의 심사를 처리하려는 사례는 대한민국 역사상 본적이 없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롯한 새로운 ‘게임의 룰’을 단독 처리하려는 발상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민주당이 오만하고 독재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면죄부를 줘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수시로 국회 보이콧을 일삼으며 국회를 폐쇄하다시피 한 행태는 질타받아 마땅하다. 자유한국당이 유능한 대안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통렬히 반성해야 마땅하다.

선서문

국회의원은 취임과 함께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 20대 국회는 이 사실을 망각한 국회였다.

정치가 절망을 재생산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단은 결국 정치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국민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내년 21대 총선이다. 역사는 선거가 바꾸고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당선만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인지, 국가와 국민이 아닌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인지 등을 구별하는 유권자의 혜안이 절실해졌다.

내년에도 대한민국의 대내외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직면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 사회 제반 문제들이 산적하다. 북한의 핵실험을 비롯한 무력도발,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 등 외교·안보 분야 난관들도 극복해야 한다. 따라서 제21대 국회는 국민의 의견을 잘 수렴하여 국가적 난제들을 현명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생산적인 국회가 돼야 한다. 각 정당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을 듣지 않도록 혁명적 수준의 정치 개혁을 해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희망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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