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어느덧 12월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이 여기저기서 진행된다. 그리고 각 단체들마다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 역시 활발해진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연말이면 매년 어김없이 벌어지는 풍경이다. 더운 날보다 추운 겨울이 가난을 견디기가 더 어려운 건 사실이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란 보통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일진대 하물며 없는 이들에겐 오죽하랴. 하지만 빈곤층의 입장에선 하루하루 사는 그 자체가 고단한 삶의 연속일 뿐, 겨울이든 여름이든 오십보백보다. 따라서 한시적 도움이 약간의 힘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해결책은 될 수 없기에 빈곤층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더 절실히 요구될 수밖에 없다.

지난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우리사회 소외계층의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지난달 서울 성북구에서 70대 여성이 40대인 세 딸과 함께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동반 자살하는가 하면,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 고가다리 아래에서 50대 아버지가 여섯 살, 그리고 네 살짜리 두 아이와 함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보름 뒤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선 일가족 세 명과 딸의 친구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 모두는 ‘힘들었다, 하늘나라로 간다’ 또는 ‘미안하다’등의 생활고를 비관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걸로 전해졌다. 가난을 비관해 동반 자살한 사고가 한 달 사이 세 건이나 일어난 것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7월에는 탈북자 출신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된 적도 있었다. 당시 집안에 있던 냉장고는 아니나 다를까 텅 빈 상태였다고 한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인 우리사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게 과연 가당키는 한 건가. 성장의 그늘에 가려 빈곤의 덫에 걸린 이들을 미처 돌보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 막중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MIT경제학과 교수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2012년 자신들이 펴낸 공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 국가의 빈곤정책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가 ‘이데올로기’와 ‘무지’ 그리고 ‘타성’ 때문이라고 했다.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보편적인 이익에 호소’하기보다는 ‘후견주의적 메시지’에 치중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트리는가 하면, 가난에 대한 몰이해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오히려 땜질식 처방만 제시하기에 빈곤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흔히들, 가난한 사람은 무지하고 게을러서 아무리 도와줘도 결국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했고, 그래서 일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해, 결국 빈곤의 덫에 갇혀버린 건 아닌가라는 생각은 않는다. 하지만 이들 부부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이 왜 지금처럼 가난하게 살아가는지보다 정확히 이해’해야만 제대로 된 빈곤문제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기준 43.8%로 OECD국가 중 단연 최고다. 게다가 우리의 기대수명은 남자가 78.7세, 여자가 85.7세로 OECD국가 평균보다도 높다. 노인 인구는 점점 느는데 노후 환경은 갈수록 나빠질 거란 전망이 충분히 가능한 수치들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은 2017년 기준 25.4%로 우리와 무역의존도가 비슷한 일본과 독일에 비해 2.5배나 높다. 우리의 고용시장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상황에 따라선 빈곤문제가 비단 노인층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봉건왕조시대가 아니다.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시민의식이 드높은 사회라면 해결 못 할 일도 아니다. ‘기회균등’이나 ‘좋은 일자리 만들기’와 같은 실질적인 사회정책과 더불어 선진 복지국가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보장’과 같은 전향적인 복지정책을 우리도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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