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私 사사로움·사욕)’란 마음을 갉아먹는 벌레이고 모든 악의 근본입니다. 옛날부터 나라가 잘 다스려진 날은 항상 적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았습니다. 자신을 파멸시키고 나라를 망치게 하는 것은 다 임금이 ‘사(私)’라는 한 글자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순간 한가지 일에서 사심을 극복해 행하지 않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평상시 모든 일에서 사심을 말끔히 다 제거해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말끔히 다 제거해 버렸다고 하더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홀연히 다시 처음과 같이 사심이 싹틉니다. 그래서 옛날의 성현은 항상 조심하고 삼갔습니다. 마치 깊은 못에 다다른 것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여 날마다 노력하고 밤마다 조심해서 잠깐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히 하여 구덩이에 떨어지는 일이 있을까 두려워 했습니다.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를 할 때도 오히려 치우친 평이 있을까 경계하고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서도 또 욕심을 부려 이익을 추구할까 봐 경계했습니다. 비뚤어지지도 않고 치우치지 않으며 왕의 길은 넓고 평평합니다. 어긋남도 없고 한쪽으로 기울어짐도 없어야 왕의 길은 바르고 곧게 됩니다. 비뚤어지고 기울어지는 일이 없이 왕의 준칙을 잘 지키는 이들만 모으면 모두가 준칙을 준수하게 됩니다. 편벽되고 편당하고 어긋나고 이울어진 사사로운 마음이 없어야만 준칙을 잘 지키면서 왕도를 따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성인이 경지에 이르러서도 사사로운 마음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항상 조심하고 경계했습니다. 하물며 성인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서경에 ‘성인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이 되고, 광인이라도 충분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현명하신 전하께서는 정신을 가다듬어 유념하소서”

1568년 68세의 퇴계 이황이 17세의 왕 선조에게 올린 상소다.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심을 없애는 것임을 강조한 충언이다. 선거개입 하명수사, 유재수 감찰 무마,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등 권력형 국정 농단은 모두 사심과 얽혀 있는 ‘사심 게이트’다. 퇴계의 상소는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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