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조정은 여전히 줄다리기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요구안 관철 때까지 남을 것"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58·여)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 지난 11일 고공농성장에서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재용 기자

“갑자기 불어닥치는 돌풍이 가장 무섭다”

지난 11일 대구 남구 영남대학교병원 옥상 고공농성장에 오르자 잿빛 천막이 먼저 눈에 띄었다. 6개씩 묶음으로 된 1.5ℓ 물통 60여 개가 천막을 붙잡고 있었다. 갑자기 부는 바람에 천막을 4번이나 날린 사례가 있어 같은 사고를 예방하려는 조치다. 천막 내부는 텐트와 침낭, 휴대용 가스레인지, 주전자, 핫팩 등 최근 맞닥뜨린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물품이 가득했다. 옷을 7벌이나 껴입은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58·여)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은 이 중에서도 핫팩이 ‘효자’라고 했다.

과거 노조활동에 따른 해고가 부당하다며 지난 7월 1일 고공농성을 시작한 박 지도위원이 농성 165일째를 맞았다. 해고자 원직 복직 등을 요구하며 무더위에 시작한 농성은 태풍 등 궂은 날씨를 거쳐 어느덧 추위와 싸우게 됐다. 이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바람이다.

박 지도위원은 “계절을 떠나 거세게 부는 바람이 제일 힘들다”며 “주변에 빌딩이 없어서 바람이 불면 그대로 적용돼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설명했다.

영남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그녀는 지난 2007년 해고됐다. 앞서 2006년 8월 영남대병원 노조와 함께 주5일제 시행에 따른 인력충원 등을 요구하며 사흘 동안 부분파업을 벌인 결과다. 당시 노조 간부 등 10명이 해고통보를 받았으나 2010년 대법원이 부당해고 판결을 내리면서 7명이 복직됐다. 하지만 박 지도위원은 포함되지 못했다.

대구 영남대병원 옥상 고공농성장에 설치된 천막 주변에 물통이 가득 놓여 있다. 전재용 기자

박 지도위원은 올해 노조를 파괴한 창조컨설팅 대표가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확정받았는데, 앞서 노조탄압에 관련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박 지도위원을 비롯한 노조는 △해고자 원직 복직 △노조 기획탄압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 △노조 원상회복 △비정규직 철폐 등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대법원 판결로 해고가 확정된 박 지도위원 등 해고자 원직 복직은 힘든 실정이라며 일부 요구안도 병원 차원에서 이행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노조와 계속 협의해 합의점을 찾는 데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문진 지도위원이 대구 영남대병원 옥상 고공농성장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전재용 기자

하지만 노사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앞서 대구고용노동청에서 사적 조정을 2차례 진행해 노사에 조정안을 전달했으나 진척이 없는 상태다.

박 지도위원은 “처절하게 투쟁하는데도 불구하고 사측과 정치권에서 움직임이 없다”며 “노조활동을 위해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이 서글프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법 이전에 사람이 먼저다”며 “요구안이 관철될 때까지 ‘돌부처’처럼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성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지도위원도 고공농성장에서 새해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과거 많은 선배가 민주화에 헌신한 것에 비하면 이곳은 오히려 편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조에서 요구안이 100% 관철되지 않았다고 합의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측이 어느 정도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 성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농성을 멈추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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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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