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무쇠 솥뚜껑을 / 연신 들썩이는
울음소리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뜨거운 입김을 씩씩 불며
도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구름 책
몇 권 분량인가.

훌훌 들이마시며 살아온 세월
장작불에 은근해질 때
사지가 붙들고 다니던 그 큰 집은
이미 헛방으로 사라지고
함께 걸어온 길들마저 아궁이에 넣어져
일순간 검은 연기로 승천하는데
부지런히 걷어 뛰어온 다리만 붙잡혀
뿌연 이야기 진하게 배어나도록 요동친다.

워, 워, 소리쳐도 / 멈추지 않는 시간의 그림자
지푸라기 같은 질긴 인연을 되새김하던
수많은 나날의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여.

장작불은 질기고 모진 혓바닥으로
꾹꾹 밟아온 생애를 뜨겁게 핥아대고
비로소 고삐 풀린 바람이
울음 없는 울음소리, 둘둘 말아 / 먼 길 떠난다.




<감상> 상처 없는 울음이 어디 있으랴. 삶 자체가 울음을 껴안고 있는 것을. 그 울음을 이야기로 풀어내자면 몇 권의 책으로 엮어지고, 무쇠 솥은 닳고 닳을 것이다. 굴뚝 연기가 사라지면 빈집이 되고, 흙벽이 떨어지고, 서까래가 곧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삶의 질긴 인연은 내 다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워, 워, 소리치면 잘 멈추는 소처럼 되지 않고, 아직 울어야 울음들이 이생에 남아 떠돌아다닌다. 울음이 삶에 대한 미련이라면 이마저도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을. 장작불처럼 훨훨 태워진 울음은 연기처럼 날아가고, 바람은 그 연기를 흩어지게 한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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