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동두깨미는 소꿉놀이의 사투리다.

중학생이 되고서야 소꿉놀이란 표준말을 알게 되었지만 그전엔 늘 동두깨미로 알았고 동두깨미 살았던 추억을 지금까지 아련해 하고 있다.

뭐 빵깽이, 빵깨미, 반두깨이라는 말도 어렴풋이 생각나지만 나에겐 오로지 동두깨미(동디깨미)로 남아 있다.

동두깨미는 사금파리를 주워다 깨진 그릇의 굽이 있는 부분을 솥이라고 걸어놓고 큰 사발의 굽은 큰솥, 작은 것은 동솥, 보드라운 흙은 밥, 연한 풀은 나물이라 하면서 살림을 살았다.

뒷집의 나보다 한 살 적은 가시내 동무는 언제나 엄마하고, 나는 아부지, 한 살 어린 동무는 아들로 역을 맡아 살림 사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일종의 역할극 같은 놀이 였다.

언제나 주도권은 한 살 어리지만 여자 동무가 쥐고 있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사금파리를 주워오고, 흙을 파오고, 풀씨나 풀을 뜯어 와야 했으며, 먹어라하면 냠냠 먹는 시늉을 잘도 내었었다.

그러다 한 번은 우물가에서 놀다가 엄마 역을 맡았던 동무가 우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는 동동걸음으로 아버지께 알렸고 아버지는 급히 달려와 우물에 뛰어들어 아이를 건졌다.

그때부터 생명을 건져주었다고 아버지의 양딸, 나의 동생이 되었고 두 집안이 더 친하게 되었었다.

그 여자동무(동생)는 벌써 세상을 떠났고, 일흔 중반에 든 나에게 새삼 그 시절이 아련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 나이를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듯이. 여자 동무에서 동생이 된 동무 말고도 동두깨미를 산 동무가 있었지만 간혹 아이들의 소꿉놀이를 볼 때마다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며칠 전 경주 황성공원에서 먼 곳에 사는 초등학교 동기 친구들을 만났다. 아무리 늙은 티를 안 내려고 옷을 가려 입고 마음을 젊게 가지려고 노력해도 먹는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 얼굴 구석구석에 흘려보낸 세월이 남아 있고, 몸 이곳저곳에 먹은 나이들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더구나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인사말을 주고받고, 뭐 하고 살았느냐를 물은 뒤 반가운 마음에 비해 대화가 뜸해졌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담배를 하는 사람은 나 외엔 하나도 없고, 소주 한 잔이라도 제대로 먹는 동무는 둘뿐이었다. ‘아이고, 이놈들아!’싶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소주 몇 잔에 비틀걸음으로 돌아와 동두깨미 추억에 잠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왜 새삼 동두깨미 이야기를 들먹이게 되었을까?

다섯 살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또래 남자아이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부모의 글이 최근 국민청원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피해 어린이의 부모는 ‘자신의 5살 딸아이가 성남의 어린이집과 아파트 단지 안에서 동갑내기 남자아이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어린이집 CCTV를 확인해본 결과 당시 정황이 그대로 찍혀있는 것을 확인했고, ‘신체 중요 부위에 염증이 생겼다’는 병원 소견서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가해자 측 부모는 ‘문제 행동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부풀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법적 대응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처벌이 불가한 5세 아이가 성추행을 했단다.

참, 희한한 일이다. 다섯 살짜리의 성추행이라. 그것도 동갑내기로 여자아이가 훨씬 조숙할 시기인데.

동두깨미 놀이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른들의 과잉반응은 아닌가?

지금은 소꿉놀이 장난감이 아주 고급으로 한 상 잘 차려 먹을 수 있게 나오는 것 같던데.

아무리 좋은 장난감이 나와도 너는 아빠로, 나는 엄마로 역할 분담놀이를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나로서는 아쉬운 생각이 들어 한 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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