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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Between Red
[아침광장] Between Red
  • 김경숙 기획자(ART89)
  • 승인 2019년 12월 18일 16시 37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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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기획자(ART89)
김경숙 기획자(ART89)

‘그’ 작가의 전시 이후, 지워지지 않은 붉은색이 있다. 2019년. 이번 여름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익은 붉은색 풍경의 잡지(행복이 가득한 집) 표지가 있어 얼른 집어 들었다. 여전히 <내 이름은 빨강> 이세현 작가였다.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좋은 부적의 기운처럼 그 색을 간직해 보려고 한다.

나는 전시 기획을 할 때면 습관처럼 자료를 일일이 손으로 종이에다 기록해 놓고 컴퓨터 작업을 하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일은 잘 못 한다. 또한 처음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을 켜 놓고도 옆길로 새는 경우가 많아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이런 행동들이 일을 더디게 하지만, 그 속에 일어났던 일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2017년에 이세현 작가를 만나러 갈 때도 그랬다.

이세현 작가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이세현 작가는 경남 거제 출신으로, 마흔 가까운 나이에 영국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구입한 사람은 세계적 컬렉터인 모니크 버그(Monique Burger·버그 컬렉션 대표)였다. 그 후, 현대미술 컬렉터 울리 지그(Uli Sigg·스위스), 페이스 갤러리(미국), 뱅크 오브 아메리카(미국 본사) 등 세계 곳곳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거나 전시를 하였다.

2015년엔 세계 주요 브랜드 중 하나인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와 협업하여 컬렉션(Exclusive Limited Edition)을 선보였다.

이세현 作 Between Re
 

그의 작품이 된 ‘붉은색’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군 복무 시절, 나는 군사분계선 근처 전략지대에서 야간 보초를 서곤 했다. 그때마다 야간 투시경을 썼는데, 세상이 온통 붉게 보였다. 나무와 숲이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이지만, 또 한편으론 왠지 모를 두려움과 공포가 그 속에 같이 존재하고 있었다. 절대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풍경이었다.’ - 이세현 작가

군사 분계선. DMZ는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해 설치된 비무장 지역이다. 휴전 이후 민간행사와 구제사업 외에 어떠한 적대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고, 민간인과 군인을 막론하고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 없다. 그 결과 사람들의 때가 묻지 않은 청정지역으로 희귀동물들의 서식지가 되었다. 하지만 아름답게만 보이는 그곳은 보일 듯 안 보일 듯 북한과의 팽팽한 긴장의 연속으로, 그 경계선 속에 내포되어 있다.

이세현 作 Between Red

평소 내가 알고 있던 붉은색은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의 열정적인 응원의 색. 아니면 60년대 끄트머리 세대의 학습된 북한의 ‘적화통일’ 이미지가 남아있다. 이세현 작가의 붉은색은 어떤 색일까?

눈앞에 보고 있던 자연의 풍경을 붉은색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그 색으로 인해 현실의 풍경이 무엇인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을 듯 보일 것이다.

작가 작품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여백의 공간에 따라 하나의 풍경이 조형적으로 펼쳐져 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시골집의 굴뚝 연기, 항구, 작가가 이야기했던 고향 집, 어느 지역의 벚꽃 길 그리고 구름의 다이나믹(dynamic)한 이동 등 여러 풍경들이 군데군데 놓여져 있다. 마치 이곳저곳을 끄집어내는 기억의 유영처럼….

‘거제의 풍경은 섬 하나만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섬들과 함께 뭉게구름이나 갈매기, 파도, 파란 하늘, 물놀이, 친구들과 함께 놀던 섬들까지 멀리 다 보이는 하나의 풍경으로 남아있어요. 맑은 하늘과 솜털 같은 하얀 구름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파도소리.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할까요. 풍경 속에 어린아이는 모든 것이 하나 되어 하루종일 놀았던 보물섬 같은 이미지죠. 두 번째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입니다…’ - 양지윤 평론가와 인터뷰 중

작가의 작품을 언뜻 보면, 꿈과 환상의 모습이 펼쳐져 있는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보인다. 풍경 속 빨간색이 주는 비현실적인 느낌과 정지된 듯이 보이는 화면 속에 유동(有動)적인 연기, 구름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 실체’ 즉 초현실과는 다른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은 지극히 현실에 바탕을 둔 이성의 세계이다.

작품의 주제는 ‘Between Red’이다. ‘붉은색’과 그 사이. 다가오는 2020년에 펼치는 ‘사이’에는 또 어떤 세계와 이야기가 작가의 작품에 담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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