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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9. 심산 김종훈 도예가
[명인] 9. 심산 김종훈 도예가
  • 권오항 기자
  • 승인 2019년 12월 22일 21시 3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2월 23일 월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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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따라 온고지신 정신 따라 20년 세월 달항아리·찻그릇 정진
달항아리를 빚고있는 김종훈 도예가
비정형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야말로 달항아리 최고의 매력.

백자 달항아리는 눈처럼 흰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가 가장 성공적으로 표현된 예술품의 하나이다.

특히 달항아리는 깔끔한 정형이 아니라 어딘가 이지러진 듯한 자연미에서 그 매력을 크게 드러낸다.

성주 가야산 아래 자리 잡은 심산요에 가면, 이러한 달항아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내고 있는 명인이 한 사람 있으니 심산요의 주인 김종훈 도예가가 바로 그다.

그는 1985년 도예에 처음 입문해 경북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토인 백영규 선생에게 사사한 이후 이곳 성주에 심산요를 열고 20년 이상의 세월을 달항아리와 찻그릇에 주로 정진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가마에서 구은 달 항아리를 꺼내든 김종훈 도예가
△ 좋은 흙을 찾아 가야산 아래 자리 잡다.

그의 작품 활동이 이루어지는 심산요의 ‘심’은 ‘찾을 심(尋)’이다. 좋은 흙을 찾아 가야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음을 담은 것이다.

“흙을 찾아서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흙이 없으면 도자기도 없으니 작품에 맞는 흙을 찾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에 자리 잡게 된 저간의 사정이 말해주고 있다.

성주의 가야산 자락인 수륜의 백운리, 가천면, 용암면은 양질의 백토가 풍부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백자를 빚는데 정진하고 있던 그에게는 최적의 장소인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 도자기라면 그 원재료인 흙을 찾아가는 길은 자신의 본성을 찾는 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릇의 형태는 그 시대의 정신 이념과 사회의 속살을 골격으로 삼고 색깔, 크기, 종류는 문화를 뜻한다. 이러한 이유로 흙의 색감, 점력, 불의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고민하고 나타내는 것은 작가 본인의 몫이다.”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그는 1990년 백운동 일대 흙의 특징과 변화를 실험하는 것으로 시작해 찻그릇, 달 항아리 등의 작품을 제작한 이래로 현재에도 흙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흙의 본질은 정제, 수비, 건조를 반복하면서 점력을 향상 시키며 성형하기 힘든 그릇을 형상화할 수 있는 깨달음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온고지신이다.”라는 그의 말이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인 듯하다.



△조선 백자 달항아리의 새로운 지평.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의 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 라고 백자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찬미한 바 있다.

그만큼 달항아리가 지닌 매력이 깊다는 것인데, 그의 달항아리 제작도 그러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의 하나이다.

달항아리는 17세기 조선이 겪은 참화 속에서도 지향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쓴 도공의 고뇌의 산물로서 숙종 시대인 17세기 말부터 영조시대인 18세기 100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반짝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근래에 들어와 여러 작가들에 의해 다시 재현되면서 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노력 들이 계속되고 있다.

높이 40cm 이상으로 최대 지름과 거의 1대1 비례를 이루고 몸체가 원만한 원형을 이룬 이 대형 항아리는 워낙 크기 때문에 하나의 모양을 짓지 못하고, 위쪽과 아래쪽 부분을 따로 빚어 접붙여 만들 음으로서 하나의 항아리 모양이 완성된다. 그래서 허리께에 대개 이음 자국이 보이는데, 달항아리의 매력이 바로 이 깔끔한 정형이 아니라 어딘가 이지러진 듯한 자연미에서 나온다. 중력으로 무너지려는 백토의 힘과 원만한 모양을 쌓아 올리려는 도공의 의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산물인 셈이다.

그는 달항아리를 만들기 위해서 백토의 종류(설백, 유백, 청백, 회백)의 색감의 흐름을 연구하며 작품을 제작하고 있고, 그의 달항아리는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정치, 사회적 갈등 빈부 격차의 심각한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평화의 위로를 주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개발하고 연구한 백토를 몸 흙으로 삼고 달항아리가 지닌 아픈 역사성을 형상화함으로써 우리 시대 달항아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기계로 찍어낸 완벽에 가까운 대칭과 정형의 모습보다는 비정형의 모습이 달항아리의 매력이지요. 상하좌우의 대칭이 비정형적으로 이뤄지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야말로 달항아리 최고의 매력 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말에서 앞으로 만들어질 그의 달항아리 작품을 기대케 한다.

김종훈 도예가의 작품, 각다관
△찻그릇의 정립.

김종훈 도예가의 심산요를 방문하게 되면 달항아리와 함께 많은 다관과 찻사발을 접하게 된다.

설백색 태토를 1300도의 고온으로 번조한 백자다관은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니기 위해 정제 과정을 거쳐 숙성 후 설백색의 본성을 그대로 이끌어 내어 차가 지닌 향기가 순백의 빛깔과 함께 어우러진다.

그리고 전시돼 있는 그의 질박한 찻사발은 순박한 시골 농부의 손을 닮았다. 약간 까슬까슬한 질감의 순박한 힘은 매끄러운 일반적인 그릇과 대비된다.

“우리 흙의 본성을 잘 이해하고, 거칠지만 부드러운 질감과 유약이 불의 과정에서 잘 익은 그릇이야말로 차의 맛과 기운을 잘 표현한다”는 김 도예가의 말에는 찻그릇을 제작하는 그의 지론이 투영되어 있다.

심산요의 찻그릇은 사질 점토를 수비 정제 과정을 거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 토, 재, 석회를 섞어 소나무 장작으로 번조함으로써 색, 향, 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다.

경북도청 본관 달항아리,찻그릇,그 넉넉한미학 전시회 전경
△쉼 없는 작품 활동, 대를 잇다.

그는 공예품 대전 대상을 비롯해 여러 공모전에서 다양하게 입상을 하였고, 국내·국외 전시(프랑스, 독일, 베트남, 일본, 터키)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2018년 명인으로 선정되면서 특허와 의장등록, 석간주 대체용 유약 및 제조방법을 정립하기도 했다.
심산요 전시장의 내부 모습
현재는 사단법인 경상북도 도예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경상북도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그의 둘째 아들 김길산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32-다호 백자장)백영규 선생에게 사사 받아 전수 장학생으로 작품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등 도예가의 길로 정진하고 있기에 아버지로서 한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도움말=박재관 성주군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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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항 기자 koh@kyongbuk.com

고령, 성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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