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밑까지 내려온 어두운 숲에
몰이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려오고,
쫓기는 사슴이 / 눈 위에 흘린 따뜻한 핏방울.

골짜기와 비탈을 따라 내리며
넓은 언덕에 / 밤 이슥히 횃불은 꺼지지 않는다.

뭇짐승들의 등 뒤를 쫓아
며칠씩 산속에 잠자는 포수와 사냥개,
나어린 사슴은 보았다
오늘도 몰이꾼이 메고 오는 / 표범과 늑대.

어미의 상처를 입에 대고 핥으며
어린 사슴이 생각하는 것 / 그는
어두운 골짝에 밤에도 잠들 줄 모르며 솟는 샘과
깊은 골을 넘어 눈 속에 하얀 꽃 피는 약초.

아슬한 참으로 아슬한 곳에서 쇠북소리 울린다.
죽는 이로 하여금 / 죽는 이를 묻게 하라.

길이 돌아가는 사슴의 / 두 뺨에는
맑은 이슬이 내리고
눈 위엔 아직도 따뜻한 핏방울……



<감상> 이 시에서 쇠북소리는 성탄제의 종소리를 연상케 하고, 용서와 화해의 메아리로 들린다. 어미 사슴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어린 사슴은 연약한 생명성과 순결성을 보여준다. 어린 생명에게 사냥꾼의 횃불은 무자비한 광기와 폭력이 서려 있는 것이 아닌가. 폭력과 비방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어미 사슴의 자기희생은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다. 예수님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늘이 성탄제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말씀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 실천해 옮길 때라 생각한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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